자국 안보와 中 견제 몰두하는 美…유럽·아시아 우방들 '긴장'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미국이 최강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보 정책 틀과 정보기관 위상이 정권 교체 같은 정치적 이유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진국일수록 그 반대다. 미국은 4년마다 발표하는 '국가안보전략'(NSS)과 '국가방위전략', 8년 주기로 내놓는 '핵태세검토보고서'(NPR) 등을 통해 국가 생존 방향과 계획을 천명한다. 이들 보고서는 즉흥적인 게 아니다. 정보당국을 포함한 각 기관이 오래 수집한 첩보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장시간 논의해 확정하는 중장기 계획이다. 물론 최종 단계에선 해당 시기 대통령 철학이 어느 정도 반영되지만 기본 틀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안보에 관해선 초당적 공감대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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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새 대외 나침반인 2025 NSS를 발표했다. 1기 때 나왔던 NSS보다도 미국우선주의가 강화됐고, 불개입주의로 다가가는 방향성을 보였다. 현직 대통령 색깔이 예전보다 더 많이 반영됐단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최고 대외전략 지침에서 드러난 변화에 세계 각국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북한 또는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사라진 데 주목하고 있다. 북핵을 비공식 용인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다만 국제정세에선 나무보다 숲을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비핵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원인과 배경을 전체 기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미국은 과거 먼로 독트린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이다. 먼로주의는 19세기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미국과 유럽이 서로 불간섭·불개입하도록 한 고립주의다. 이를 통해 미국은 패권국으로 도약했고, '서반구'로 표현하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독보적 지위를 굳혔다. 미국은 중국 같은 신흥 강호의 도전 속에 최강 지위를 유지하려면 한동안 성(城)으로 돌아가 군사와 무기를 재정비하고 전력을 다시 끌어올릴 필요성을 자각했음을 고백한다. 새 NSS 보고서에선 '먼로 독트린'이 명시됐을 뿐 아니라, 트럼프식 변주인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 계론(系論)'까지 등장한다. 보고서는 "서반구에서 미국의 우위를 회복하고, 본토와 이 지역 전역의 주요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보호하고자 먼로 독트린을 재확인하고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보고서는 과거 수십 년간 대외 전략을 실패로 평가하며 어떤 나라나 이슈도, 심지어 대의명분이 '아무리 가치 있어도' 전략의 초점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동맹국이 위기에 빠져도 핵심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아울러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더 공고히 하며 열강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는 남미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의 남미 진출을 봉쇄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친중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행동 조짐은 그 증거다. 보고서는 "서반구 밖 경쟁자들이 우리 서반구에 병력이나 기타 위협적 역량을 배치하거나 전략적 중요 자산을 소유 또는 통제할 능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요 표적은 중국이고, 러시아 등도 견제 대상이다.
이제 미국은 과거 세계 요충지에 군사력과 돈을 쏟아부으며 공세적 확장 정책을 폈던 기조를 접고, 한동안은 홈그라운드 중심으로 수비에 치중하며 전력을 재정비하고 미래를 도모할 때라고 판단한 듯하다. 보고서는 "아틀라스처럼 전 세계 질서 전체를 지탱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각자도생 시대를 예고했다. 과거 많은 전력을 쏟았던 중동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절하했고, 주요 동맹이 포진한 유럽과 아시아에도 자위 책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유럽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의 방위비 분담액 및 국방비 확대 요구는 커지고, 미군 전략적 유연성도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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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결론적으로 미국은 한동안 자국 안보와 앞마당 관리에 치중하고 중국의 부상을 막는 데에만 한정된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할 수밖에 없다고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의 의미를 읽고 재빨리 적응하는 것만이 생존할 길이다. 비핵화 실종에 당황한 건 우리지만, 유럽의 반응은 더 당혹스러워 보인다. 러시아 위협에 대한 자주국방 요구가 커진 데다, 문명 소멸 위기까지 거론해 '서구적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훈계까지 받아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근본 없는 아랫것'으로 여긴 사람에게서 근본이 무너졌단 지적을 받은 '몰락한 양반' 같은 모양새다. 일부에선 내정 간섭이라며 분노를 터뜨린다. 다만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외에도 선도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마저 경제·사회적 위기 신호들이 잇따르니 반박할 여지도 별로 없다. 보고서는 유럽의 이민자 문제와 이념 편향까지 거론하며 기독교 보수주의로 상징되는 전통 유럽 문명을 회복하라는 취지의 바람을 전했다.
우리를 비롯한 주요국들이 이번 보고서에서 민감하게 주목해야 할 건 미국이 양단간 선택을 공식 요구하기 시작한 대목일 듯하다. 2기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우리 편이냐, 중국 편이냐를 노골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처럼 중요 공식 문서에서 어느 편에 줄 설 거냐고 직접 강조한 건 이례적이다.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주권 국가와 자유 경제로 이뤄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살지, 아니면 지구 반대편 국가들의 영향을 받는 평행 세계에서 살지를 놓고 모든 나라들은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2월09일 09시1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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