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허에서의 죽음[임용한의 전쟁사]〈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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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 갑골문자가 상나라(기원전 1600년∼기원전 1000년경)의 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1928년경부터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던 은허가 발굴되면서 전설 속의 왕국이 역사가 됐다. 상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이후의 중국 문화와는 많이 달라 지금도 학자들을 당혹하게 한다. 그중 하나가 인신 공양이다. 일반적인 순장과 달리 살해해서 묻은 유골이 상당수 발견됐다. 은허의 묘지에 묻힌 순장자가 1만∼2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갑골문에는 더 참혹한 내용이 등장한다. 풍년을 기원하려, 재앙을 막으려고, 비를 그치게 하기 위해 인신 공양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갑골문에는 이 정도 인원을 바치면 되겠느냐고 신에게 묻는 내용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한두 명을 바치기도 있지만 많게는 500명, 1000명 단위로 올라갔다.

희생자들은 대개 이민족 포로들이었다. 이렇게 전쟁포로를 인신 공양하는 방식은 상나라가 활발하게 벌였던 정복 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적이 우리를 공격하고 침범하려 하기 때문에 전쟁을 해야 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해 국민의 재산과 평화를 보존하려면 적군을 희생 제물로 써야 한다는 논리도 사용된 것 같다.

왕성한 팽창 정책이 끝나자 인신 공양의 수도 급속히 줄었다. 그런데 평화가 찾아오자 일상의 기원을 위해 부리던 노비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퍼졌다. 전쟁 과정에서 힘을 남용하다 보니 상식이 무뎌진 것이다.

희대의 악녀 달기가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잔혹한 행동을 일삼았다는 전설은 주변 민족의 생명을 도구로 간주했던 상나라의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힘은 타인의 고통에 눈멀게 한다. 타인의 고통에서 자신의 쾌락을 뽑아내기 시작하면 그 집단은 바로 타락하고 힘을 잃는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인데, 비극이 수없이 반복된다는 것도 역사의 진리이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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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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