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보건부 고위 관계자 두 명이 1월 8~9일 이틀간 약 3만 명이 사망했다고 밝혀, 기존 발표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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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내부 집계는 최고지도자 직속 강경파가 발표한 3,117명보다, 또 인권단체가 확인한 5,459명보다 훨씬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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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기록과 의료진 비공식 집계도 30,304명으로 유사하며, 군 병원 등은 포함되지 않아 실제 수치는 더 높을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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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차단과 통신 두절 속에서 병원, 목격자, 해외 연구자들이 제한된 정보로 피해 규모를 파악 중
- 이 사태는 1979년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유혈 진압으로, 정권과 시민 모두에게 중대한 분기점으로 평가됨
보건부 관계자들의 내부 집계
- 이란 보건부 고위 관계자 두 명이 TIME에 1월 8~9일 이틀간 약 3만 명이 거리에서 사망했다고 밝힘
- 사망자 수가 너무 많아 국가의 시신 처리 능력이 마비, 시신 운반용 18륜 트레일러가 구급차를 대체했다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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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가방 재고가 소진되었다는 증언 포함
- 정부 내부 집계는 1월 21일 강경파가 발표한 3,117명보다 훨씬 많으며, 이는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직속 보고 체계와 별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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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반 인권활동가뉴스( HRANA ) 는 5,459명 사망을 확인하고 17,031건을 추가 조사 중이라고 발표
- TIME은 이 수치를 독자적으로 검증하지 못했다고 명시
의료진 및 독립 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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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란계 안과의사 아미르 파라스타(Amir Parasta) 가 병원 기록을 집계한 결과, 1월 10일 기준 30,304명 사망으로 보고
- 이 수치는 군 병원 사망자나 조사 미도달 지역은 포함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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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위원회는 전국 약 4,000곳에서 시위가 발생했다고 밝힘
- 파라스타는 “실제 수치는 더 높을 것”이라고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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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홉킨스대 폴 스피겔 교수는 병원 자료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위험한 환경에서 신속히 수집된 점을 높이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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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 레스 로버츠 교수는 “30,000건의 확인된 사망은 거의 확실히 과소평가된 수치”라고 언급
학자들의 비교와 역사적 규모
- 로버츠 교수는 “이 정도의 단기간 대량 살상은 폭발물과 총격이 혼합된 형태에서 발생한다”고 설명
-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사한 규모로 비교 가능한 사례는 홀로코스트 중 1941년 키이우 외곽 바비 야르 학살(33,000명 총살) 뿐이라고 언급
- 전문가들은 48시간 동안 3만 명 이상 사망이라는 규모가 현대사에서 극히 드문 사례라고 평가
시위의 전개와 진압
- 12월 28일부터 경제난 완화 요구 시위가 시작되어 곧 정권 퇴진 요구로 확산
- 초기에는 비살상 대응과 유화적 발언이 있었으나, 1월 8일 주말부터 강경 진압으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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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자 팔라비(전 국왕의 아들) 가 참여를 촉구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를 표명했으나 실질적 지원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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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외부 통신이 차단된 상태에서, 옥상 저격수와 중기관총 장착 트럭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
- 1월 9일 혁명수비대(IRGC) 관계자가 TV에서 “총알이 맞아도 불평하지 말라”고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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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ink 위성망을 통한 불법 접속으로 일부 영상과 사진이 외부로 전송됨
- 테헤란의 6개 병원에서만 217명 사망자 기록, 의료진은 1월 10일까지 최소 16,500명 사망으로 추정
개인 사례: 사흐바 라슈티안의 죽음
- 1월 9일, 이스파한의 23세 애니메이션 예술가 사흐바 라슈티안(Sahba Rashtian) 이 시위 중 총상을 입고 사망
- 친구는 “그녀가 쓰러졌고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증언
- 병원 수술대에서 사망, 장례식에서는 종교 의식이 금지, 아버지는 흰옷을 입고 “** 자유의 길에서 순교했다**”고 발언
- 이 사례는 시민 피해의 상징적 사례로 언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