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이 끝나가도록 늑장을 부리며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버스 운전사 조경철 님에게 DM이 와 있다. 그가 보낸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내 얼굴 위로 햇살 같은 웃음이 쏟아졌다. 아마도 자신이 운행하는 땡큐 12번 버스인 것 같았다. 버스 앞 유리창에는 내 시집 <콜리플라워>가 세워져 있고, 아래엔 “오늘 노선은 콜리플라워 방향”이라고 쓰여 있다. 그의 버스는 보통의 시내버스가 아니라 ‘詩내버스’였다.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 소리쳤다.
“나의 패터슨, 안전운행 하세요!”
경철님을 처음 만난 건 10년 전쯤 한 예술교육 프로젝트에서였다. 그때 그는 무용가였다. 나는 참가자들이 시를 쓸 수 있도록 이끌었고, 경철님은 그 시를 바탕으로 무용 교육을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오래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를 알고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 라이브 방송으로 그가 춤추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의 춤은 이전에 알던 춤과는 좀 달랐는데, 음악을 느끼고 있는 몸, 그보다 영혼을 보여주는 식이라고 할까. 궁금증이 일어 그 영상을 꽤 오래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사람 몸이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라면, 나는 너무 몸을 가둬 왔던 게 아닌가. 궁금했다. 누군가 두고 간 노트를 우연히 펼쳐보게 됐을 때처럼, 본 적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런 그가 영화 ‘패터슨’을 보고 버스 운전사가 되겠다더니, 정말 버스 운전사가 됐다. 영화 속 버스 운전사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처럼, 내가 아는 버스 운전사 조경철도 시를 쓴다. 몇 달 전인가 그가 친구들과 함께 낸 시집을 선물 받았다. ‘햇빛이 싹 들어왔다’는 제목처럼 책장을 넘기자마자 발견한 편지글 속에서 햇빛 같은 문장 하나가 싹 들어왔다. “그날 시인님의 낭독을 듣고부터 시를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그날…. 그는 어떻게 ‘그날’이라고 쓸 수 있었을까.
내가 도대체 어떤 날이라고 생각할 줄 알고.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와 내가 생각한 그날은 같은 날이다. 무용 연습실 바닥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내가 시를 읽기 시작했을 때, 그가 자기도 모르게 꺼내 보여준 얼굴. 그 빛이 드는 듯한 표정을 나 역시 잊지 못한다. 어떤 문장은 오래 방치된 지하 창고에 백열등 하나를 켜는 일과도 같아서 내가 간직해 온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영화 ‘패터슨’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큰 사건 없이 반복되는 주인공의 하루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거기에 시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던 나의 하루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내게도 시가 있었으니까. 그러면 냉장고에서 짭짤이 토마토 하나를 꺼내 수돗물에 씻는 일도, 조금 높은 진열장에서 먼지 쌓인 액자를 내려 닦으며 결혼식 날 키스하는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도, 엊그제 들고 나간 가방 앞주머니에서 발견한 쪽지 하나를 펼쳐보는 일도, 오래오래 음미할 만한 무엇이 됐다. 그러니까, 버스 운전사 경철님이 버스에 시집을 뒀기 때문에 승객은 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나는 이 역전이 너무도 아름답다.
‘굴렁새소년’ 채널에는 그가 찍어 올린 1년 차 버스 기사의 셀프 인터뷰 영상이 있다. 운행을 끝낸 버스에서 찍었는데, 그는 자신이 후원하는 예술가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 예술가는 다름 아닌 버스 기사가 되기 전 자신이었다. “그 친구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전류처럼 흘렀다. 내 마음 깊은 지하 창고에 백열등 하나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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