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초짜들의 협상이었다.” 삼성전자 노사의 반도체 성과급 합의 과정을 지켜본 정부 고위 인사의 관전평이다. 파업 시한 90분을 남기고 극적 합의에 성공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협상 전말을 복기해보자. 애초부터 파업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반도체 생산이 파업으로 중단될 경우 “공멸한다”는 사실을 노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노사 모두 벼랑 끝 전술로 맞섰지만 결렬에 따른 피해는 뒷감당이 안 된다. 강한 척했지만 서로 쫄고 있었다.”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렇다고 노사 자율로 합의될 상황도 아니었다. 끝내기에 나선 건 정부였다. 정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출근 인력이 공정 유지에 필요한 70% 미만으로 떨어지면 긴급조정권을 발동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가이드라인도 정부에서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노조를 겨냥했다.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을 나눠 갖는 건 투자자도 못한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도 큰 역할을 했다. 수원지법 민사31부는 삼성전자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공장 유지를 위한 필수 인력은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반 시 하루 최대 3억원의 배상 책임도 지웠다.
이렇게 청와대와 사법부까지 나서면서 노조의 위험한 게임은 일단락됐다. 합의 결과는 아는 대로다. 반도체 부문(DS)에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이 신설됐다.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올해만 6억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만에 하나 단 하루라도 반도체 라인이 멈춰섰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까.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파업 기간은 18일이었다. 한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실질적 생산 공백이 최대 6주에 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 내부 관계자의 의견은 달랐다. “최소 4개월간 반도체 생산이 중단된다. 공정이 진행되더라도 웨이퍼 등 단계별 반제품은 이미 오염돼 전량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2월 혹한으로 전력이 끊겨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1주일간 셧다운된 적이 있다. 당시 장비 복구에만 6주, 반도체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파업 시 최대 100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 정부의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파업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해피 엔딩’은 아니다. 시장 신뢰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삼성의 공급망 리스크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플랜B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애플, 아마존 등 빅테크 최고경영자(CEO)의 테이블에 올라갔을 것이다. 대안이 없지도 않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슈퍼칩 ‘베라 루빈’에 장착될 저전력 D램 공급사 중 하나로 5위권 업체인 대만의 난야를 택했다.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도 빈틈을 비집고 들어올 태세다.
삼성의 핵심 경쟁력인 ‘원(One) 삼성’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삼성 반도체 초격차는 메모리의 단독 플레이로는 어림없다. 파운드리, 시스템LSI는 물론 가전과 모바일 사업부의 유기적인 협력 위에서만 발휘된다. 마이크론은 ‘HBM 디자인 아키텍처’ 등 반도체 전문가 채용 공고를 올렸다. 성과 보상에 불만을 품은 삼성 연구 인력을 겨냥한 리쿠르팅이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서 나타난 불확실성이 한국의 투자 환경과 사업 안정성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생태계에도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반도체 라인은 소재, 부품, 장비, 설비, 유지보수 업체가 촘촘히 얽혀 있다. 삼성전자 전체 협력사는 2500여 곳에 달한다. 다행히 잠정 합의서에는 상생 협력 조항이 포함됐다. ‘협력업체 동반 성장, 지역사회 공헌, 산업 안전 등을 위한 재원 조성 및 운영 계획을 조속히 발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 실행안이 나오지 않은 문구일 뿐이다.
파업은 피했지만, 삼성이 이번 위기로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진짜 계산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무너진 신뢰와 글로벌 고객사의 이탈, 대만 중국 등 후발 업체의 침투, 협력업체의 희생, 미래 투자 여력 약화가 오를 것이다. 청구서에는 삼성 노조가 올해 받을 30조원 이상의 성과급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숫자가 찍힐 것이다. 파국을 막았다는 안도는 이르다. 초격차는 돈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반도체 사이클은 언제든 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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