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경주 APEC에서 나온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발표가 한국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한국에 GPU 26만장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국내 GPU 보유량은 6만5000개 수준이지만 2030년 30만개를 넘기면 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가 된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선언했고 언론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발표가 던지는 더 중요한 메시지는 한국의 AI 역량이 단순한 부품 확보를 넘어 국가 시스템 설계 능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GPU는 AI 경쟁의 핵심 요소지만, 고성능 부품만으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이를 뒷받침할 전력·데이터·인프라와 제도적 기반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한국이 GPU 확보에 성공했더라도 이를 산업·제도로 연결하는 국가적 아키텍처 역량이 부족하다면 경쟁국과의 격차는 해소되기 어렵다.
GPU 26만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480~600MW의 전력이 필요하다. 중형 원전 한 기 발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전력망·변전·냉각 설비 확충이 필수지만, 특히 전력망 구축에는 6~8년이 걸린다. GPU는 2030년까지 도입되지만 인프라는 지금 착수해도 일정이 빠듯하다. 수도권 전력은 이미 포화 상태고, 비수도권은 송전망 취약으로 데이터센터 집적이 쉽지 않다. 11차 전력수급계획에도 AI·데이터센터 수요가 일부 반영됐지만 총량 전망에 그쳤고, 지역·입지별 전력망 확충 전략은 담기지 않았다. 12차 계획도 논의 초기 단계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장기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의사결정 구조와 부처별 분절 행정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국빈 방문에서 협력에 합의한 UAE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참고할 만한 접근을 보여준다. UAE는 5GW급 데이터센터를 추진하며 원전·가스·재생에너지 전력망을 처음부터 통합 설계했다. 수요와 인프라를 하나의 국가 설계 도면에서 관리한 것이다. 에너지·데이터·산업·입지를 아우르는 국가 아키텍처 방식은 미래 산업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인텔리전트한 정책 설계'는 바로 이런 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개별 부처 정책의 산출이 아니라, 국가 운영 시스템을 사전에 설계하고 수요와 인프라를 일관되게 정렬하는 능력이다. 미래 수요를 예측해 목표에서 역산하고, 병목을 사전에 제거하며, 부처·산업·지자체를 통합하는 국가 차원의 설계 지능이다. GPU 도입이 확정된 시점에 전력망 확충이 즉시 시작됐어야 한다는 점도 이 관점에서 설명된다. 선언만으로는 'AI 톱3'가 가능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목표 경쟁이 아니라 기반 구축의 실질적 로드맵이다.
정책설계지능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설계 단계에서 검증된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실행 가능성과 장기 로드맵이 확보된 정책은 어떤 정부도 쉽게 폐기하지 못한다. 반면 부품 단위 정책은 정권 교체 때마다 평가 대상이 되기 쉽다. 정책의 연속성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완성도에서 나온다.
기술·산업·에너지·인프라 간 연계를 이해하는 전문 인재가 국가 설계를 주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성 기반 설계는 병목을 줄이고, 정책 자원의 배분을 합리화하며,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한다.
추격국가 시절에는 선진국의 설계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선도국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정책이 여전히 부품 중심 사고에 머문다면 GPU라는 고급 부품이 늘어도 국가 전략이라는 '제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경쟁력은 부품이 아니라 정책설계지능에서 나온다. 넥스트 코리아의 성패 역시 결국 이 설계 능력의 우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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