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어느 대기업 노조 사태에 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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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어느 대기업 노조 사태에 관한 명상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1936년 소련 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의 병문안을 하러 소련을 방문한다. 당시 프랑스의 지식인, 특히 작가들은 거의 전부가 좌익이었고 지드 역시 그랬다. 이들에게 소련은 올바른 미래이자 머잖은 유토피아였다. 이는 이념을 넘어서는 전 세계적 ‘대유행’이었다.

지드가 일행과 함께 소련에 도착했을 즈음, 임종 직전이던 고리키는 숨을 거뒀다. 장례식이 끝난 뒤 지드 일행은 소련 당국의 권유로 현지를 더 둘러보게 된다. 소련 입장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프랑스의 국민작가는 이용가치가 컸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게 10주 정도 소련에 머물다가 프랑스로 귀환한 지드는 소련에 대한 찬양문은커녕 소련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 <소련 기행>(1936)을 집필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그는 순식간에 전 세계 좌파들로부터 ‘배신자’로 내몰리며 비난받는다. 로맹 롤랑 등 동료 작가들과 절연하게 됐고, 그의 책들은 소련에서 금서로 지정된다. 그러나 ‘꺾이지 않는’ 지드는 속편까지 출간하며 소련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더욱 심도있게 전개한다. “내가 소련을 사랑한 것은 그것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그 희망의 파괴였다.” 그가 직접 목격한 소련의 현실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지드가 지적한 것들 중 ‘일부분’만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드는 어느 집을 가도 똑같은 가구, 똑같은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획일화와 몰개성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소련에서 행복해지려면 남들과 똑같아야만 한다.”고 썼다. 둘째, 소련인들은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오직 당이 주입한 대로만 사고하는 ‘정신적 노예 상태’라고 보았다. 셋째, 예술가들이 당의 나팔수로 전락한 현실을 개탄했다. 넷째,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포장하는 위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드가 가장 역겨워했던 점은, ‘사회주의적 특권계층’의 등장이었다.

소련은 노동자들의 평등한 낙원이 아니었다. 그 노동자들을 지도(지배)하는 공산당 관료들과 간부 노동자들이 호사를 부리고 권력을 누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혁명 전의 제정 러시아 귀족들보다 더 뻔뻔했다. 그건 사회주의적 모순만이 아닌, ‘인간’ 자체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였다.

여기서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1990년대 초 남한 주사파 운동권의 대부 ‘강철서신’ 김영환은 강화도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월북해 김일성을 만나는 등 북한 사회를 직접 봤다. 한데 그는 남한으로 돌아온 뒤 북한을 비판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북한 민주화 혁명가’로 변신한다. 그는 강연 도중 자신이 그렇게 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밝히고 있는데, 그중 하나로 북한 체류 당시 목도했던, 인민들에 대한 완장 찬 자들의 갑질을 인상 깊은 예로 들고 있다. 긴 세월 미국을 들었다 놨다 하던 미국 노조가 지금은 전반적으로 퇴락한 지 오래인 것도, 미국 노조(노동운동)의 도덕적 타락을 미국 대중이 어느 시점부터 깨닫고 질려버린 탓이 크다.

이념은 이념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그 이념을 주창하는 자들의 도덕적 패악질로 망한다. 그 이념의 허구가 이론적으로 정립되는 것은 그러고 난 뒤에 오는 일이다. 적어도 ‘대중’에게는 그러하다. 앙드레 지드는 집단최면과 확증편향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저 임금은 벌거벗었다!”고 소리치는 소년의 역할에 투신했을 뿐이었으나, 그래서 수모를 겪고 매도당했다. 이런 일은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어쩌면 죽는 것만큼 괴롭다. 하지만 그는 1951년 생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이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2026년 오늘의 우리는 그와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옳았는지를 안다. ‘통찰’을 지식과 지혜와 재능의 결합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물론 다 필요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느끼게 되는 바, 통찰은 정직함과 용기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때로 그것은 한 인생을 어둠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그가, 동굴 속 단 하나의 촛불일 수도 있다. 그 촛불을 들고 어둠을 빠져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게 그들의 사회, 그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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