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최경주·양용은이 뛴다…여전히 뜨거운 '진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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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투어 챔피언스 현장을 가다
21일 라바트서 하산2세 트로피 개막
‘골프 인생 2막’ 레전드가 뛰는 무대
올해 50주년...북아프리카 최고 축제
LET 대회 동시 개최로 女스포츠 평등 앞장

양용은이 20일(현지시간) 모로코 라바트의 로열 골프 다르 에스 살람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하산 2세 트로피 프로암 라운드에서 18번홀 그린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라바트=서재원 기자

양용은이 20일(현지시간) 모로코 라바트의 로열 골프 다르 에스 살람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하산 2세 트로피 프로암 라운드에서 18번홀 그린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라바트=서재원 기자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장 빌 샹클리 감독(1913~1981)이 남긴 명언이다. 기량은 세월과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어도, 뼛속까지 각인된 진정한 가치와 수준은 변치 않는다는 의미다.

이 명언을 필드 위에서 몸소 증명하는 골프계 전설들이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모였다. 21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모로코 라바트의 로열 골프 다르 에스 살람(파73)에서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스 시즌 10번째 대회인 하산 2세 트로피(총상금 250만달러)를 통해서다. 1971년 대회 창설 이후 50회째를 맞는 ‘골든 주빌리’를 기념해 현장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늘구멍’ 뚫은 거장들의 무대

전설들이 모인 PGA 투어 챔피언스는 1980년 출범해 거대한 글로벌 스포츠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만 50세 이상만 뛸 수 있는 시니어 무대지만, 단순한 ‘은퇴 선수들의 친선 경기’로 치부하면 오산이다. 현역 시절의 화려한 성적표를 요구해 오히려 PGA투어보다 진입 장벽이 높은 ‘바늘구멍’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일한 외부 진입로 역할을 하던 퀄리파잉(Q) 스쿨 제도마저 폐지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출전권은 철저히 과거 PGA투어 시절의 성과에 따라 부여한다. PGA투어 통산 5승 이상을 거두거나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선수, 혹은 평생 누적 상금 순위가 최상위권인 진짜 전설에게만 제한적으로 좁은 문이 열린다. 20~30대 시절에 확실한 업적을 쌓지 못했다면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

이번 대회에 도전장을 낸 66명의 선수는 모두 이 바늘구멍보다 좁은 문을 통과한 시대의 거장이다. PGA투어 통산 34승에 빛나는 비제이 싱(피지)을 비롯해 어니 엘스(남아프리카공화국),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들이 우승 경쟁을 펼친다. 한국 남자골프의 ‘개척자’ 최경주(PGA투어 통산 8승)와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 양용은(2009년 PGA 챔피언십 우승) 역시 이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 쟁쟁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K골프’의 뚜렷한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커트탈락 없이 54홀 3라운드 스트로크 플레이로 치러지고 카트 이용도 허용돼 겉보기엔 ‘골프 인생 2막’의 축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밧줄 안의 현실은 살얼음판이다. PGA 투어 챔피언스는 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다음 시즌 시드를 곧바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직 시즌 전체의 누적 포인트와 상금랭킹으로만 생존이 결정된다. 매 샷에 명운이 걸려 있다 보니 선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현역 시절을 뛰어넘는다. 현장에서 만난 최경주와 양용은이 입을 모아 “이곳 경쟁이 PGA투어보다 더 치열하다”고 혀를 내두른 이유다.

○‘50년 역사’ 아프리카 골프의 얼굴

하산 2세 트로피의 무대는 그 역사와 특이성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1971년 선대 국왕 하산 2세가 ‘스포츠를 통한 국가 위상 제고’를 목표로 창설한 이래, 글로벌 초청 대회와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를 거쳐 현재의 레전드 무대로 진화하며 반세기 동안 아프리카 골프의 랜드마크로 군림해왔다.

가장 큰 파격은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랄라 메리엠 컵’과의 동시 개최다. 최경주와 양용은 등 남성 레전드가 레드 코스를 누빌 때, 바로 옆 블루 코스에서는 132명의 여성 프로 골퍼가 경쟁을 펼친다. 남녀 메이저급 대회가 같은 기간, 동일한 골프장에서 열리는 것은 글로벌 골프계에서도 이례적이다. 아랍권 국가 중 모로코가 여성 스포츠 평등에 앞장서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대회 50주년의 의미를 한층 더 빛냈다.

라바트=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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