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교황의 'AI 회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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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교황의 'AI 회칙'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를 뜻하는 회칙(encyclical)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공표했다. 산업혁명에 가려진 노동자의 참상을 목도한 교황은 맹목적인 이윤 추구를 비판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했다. 이 회칙은 현대사회 교리의 출발점이 됐다.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에게 전하는 권위 있는 사목 교서다.

레룸 노바룸 이후 교황이 발표하는 회칙은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노동, 전쟁, 개발, 세계화 등 현대 사회의 난제를 해석하는 지침서 역할을 했다.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통해 핵무기 경쟁 중단과 군축을 호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베네딕토 16세가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을 통해 윤리를 잃은 세계화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는 기후 위기를 인류의 공동 책임으로 규정하며 각성을 촉구했다.

이번에 레오 14세가 내놓은 ‘마니피카 휴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는 ‘인간의 위대함’이라는 뜻을 담은 AI 시대의 회칙이다. 교황은 AI가 초래하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허위 정보가 인간을 지배하고, 소수의 강력한 민간기업이 AI를 통해 전쟁을 일상화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디지털 경제가 보이지 않는 노동력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를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AI를 성경 속 바벨탑에 비유했다. 이날 회칙 발표장에 크리스토퍼 올라 앤스로픽 공동 창업자가 참석한 것도 상징적이다.

레오 14세가 즉위 후 내놓은 첫 회칙이 AI를 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가 노동을 넘어 인간의 판단까지 대체하는 세상이다. 교황이 “무장해제하자”고 한 것은 AI를 멈추자는 뜻이 아니다. AI에 인간의 양심과 책임마저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논설실에서 수석 논설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설과 칼럼을 통해 정치·경제·국제 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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