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빵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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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1.24 17:41 수정2025.11.24 17:41 지면A35

[천자칼럼] 빵지순례

‘빵지순례’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부터다. 검색을 해보니 언론에서는 2013년 처음 기사에 등장했다. 열정적인 초기 순례자들 덕분이겠지만 빵지순례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됐다. 인스타그램에는 빵지순례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과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빵 사진이 셀 수 없을 만큼 넘쳐난다. 지역에서나 알아주던 빵집들은 전국구 인기 맛집으로 발돋움했고 동네의 숨은 고수들이 조용히 빵을 굽던 가게들도 차례차례 ‘빵의 성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명 빵집은 지역 관광을 살리는 역할도 한다. 전국구 빵집엔 빵 자체가 목적인 ‘순례자’는 물론 여행 선물로 빵을 사 가려는 관광객이 넘쳐난다. 지역의 관광 매력이 그만큼 풍성해진 셈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대전이다. 주말엔 시티투어버스가 성심당 등 지역 유명 빵집을 도는 ‘빵시투어’를 운영할 정도다. 대전은 이제 ‘과학의 도시’보다 ‘빵의 도시’로 더 유명하다. 몇 달 전 휴가 때 찾은 군산의 이성당과 전주의 PNB풍년제과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보통의 여행자가 시간을 쪼개 찾아갈 정도로 빵집은 이제 어엿한 지역 명소가 됐다. 빵지순례가 주머니 가벼운 청년들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여행’이라지만 양손 가득 빵 봉투를 든 사람들을 보니 매출액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지역경제 역시 웃을 수밖에 없다.

대체 데이터 플랫폼인 한경에이셀(Aicel)의 분석에 따르면 커피·베이커리·패스트푸드 업종의 카드 결제액이 10년 새 80% 증가해 올해 12조원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매년 새로 생겨나는 빵집도 4000개가 넘는다. 반대로 차별화, 고급화를 못 하는 동네 빵집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최근 도시 외곽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속속 들어서는 이유 중 하나가 자산가들의 상속세 절세를 위해서라고 한다. 빵집은 최대 600억원까지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의도가 어쨌든 ‘빵지’가 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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