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 스페인어로 ‘남자아이’ 또는 ‘아기 예수’를 뜻하는 이 단어는 19세기 페루 어민들의 소박한 신앙에서 유래됐다.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 차가운 바다에 난류가 흘러들면 물고기 떼가 자취를 감췄고, 어민들은 잠시 고기잡이를 멈추고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이를 아기 예수가 내려준 축복으로 여겼다. 오늘날 기상이변의 상징이 된 엘니뇨도 처음에는 이렇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자연 현상으로 통했다.
현대 기상학 관점에서 엘니뇨는 적도 부근 무역풍이 약화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특정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5개월 넘게 지속될 때 그 첫 달이 시작점이 된다. 통상 3~4년 주기로 나타나 2년 가까이 지속된다.
1997년 발생한 강력한 엘니뇨는 엘니뇨라는 단어는 물론 기후 위기의 위협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지구 대기순환 체계가 흔들리면서 북남미와 동남아시아 지역 곳곳에 이상고온, 폭우와 가뭄, 산불 같은 재해가 동시다발로 발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이듬해 여름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1조원가량의 재산 피해가 나면서 외환위기 고통을 가중시켰다.
그제 세계기상기구(WMO)는 5년 안에 역사상 가장 더웠던 2023년 기록이 다시 깨질 것이라는 내용의 기후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 기상청 주도로 한국 기상청 등 세계 13개 기관의 기후예측모델 250개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 근거는 태평양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슈퍼 엘니뇨다. 최근 수주간 태평양 수온이 이례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유럽중기예보센터등 해외 기관들은 올해 수온 상승폭이 3도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엘니뇨가 발생한 1997년(2.8도)과 2015년(2.6도)의 기록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기상이변은 단순한 더위를 넘어 농업 생산량 감소와 식량 공급 악화라는 도미노 타격을 입힌다. 경제적 관점에서 엘니뇨는 글로벌 공급망 쇼크의 주범이다. 대자연의 경고장인 엘니뇨는 어느 한 나라의 힘만으로 막아낼 수 없다. 경제·안보 분야의 각자도생이 뉴노멀이라지만, 이상 기후 대응만큼은 국경 없는 공조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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