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학부모 불안 먹고 자라는 영어유치원

1 week ago 4

[취재수첩] 학부모 불안 먹고 자라는 영어유치원

“아이가 외국인 기사님과 20분간 영어로 막힘없이 대화를 하더라고요.”

한 인플루언서가 인스타그램에 해외에서 찍은 자녀의 영상을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영어천재 아니냐” “비법을 알려달라”는 학부모의 댓글이 이어지자 그는 “‘영유’ 3년 차”라고 답했다.

평소 영어유치원(영유아 대상 영어학원) 등록을 고려하지 않던 학부모도 이런 영상을 보면 불안해진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 아이가 영어를 못 해 방탄소년단(BTS)급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면?’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SNS를 통한 비교가 쉬워진 시대, 학부모는 이런 불안 요소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1일 교육부가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레벨테스트 금지, 유해교습행위 금지, 과대·허위광고 금지라는 강수를 둔 것은 이런 불안의 고리를 강제로라도 끊으려는 시도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조사해봤지만 한국과 같은 형태의 조기 사교육이 이뤄지는 나라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교육부에 극단적 형태의 조기 사교육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사교육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만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불안장애로 인한 건강보험료 청구 건수는 2020년 1037건에서 2024년 3309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1990년대 전국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영어유치원은 2010년대 들어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는 학습식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이후 과도한 조기 경쟁이 아이들의 정서 발달을 저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영어유치원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했다. ‘돈을 쓴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영어유치원 입시 문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레벨테스트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가장 인기가 많은 강남 G영어유치원은 4주 ‘트라이얼 클래스’에 참여해 수업 참여도와 반응, 언어 능력을 평가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이 영유아 사교육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사교육 불패 신화’는 공고한데, ‘공교육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이번 대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에서 달리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교육 과정만 믿을 학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요?” 사교육 금지만을 논하기 전에 학부모가 공교육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논의를 병행해야 할 때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