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자화상[이은화의 미술시간]〈433〉

1 week ago 6

여섯 명의 남자가 긴 탁자를 둘러싸고 있다. 어떤 이는 월계관을 쓰고 책을 펼쳐 들었고, 어떤 이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탁자 위에는 천구와 지구본, 컴퍼스와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마치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는 장면을 엿보는 듯하다. 이 흥미로운 그림을 그린 이는 조르조 바사리다. 1511년 7월 30일 토스카나 아레초에서 태어난 그는 오늘날 ‘미술가 열전’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당대에는 메디치 가문의 총애를 받던 화가이자 건축가였다. 바사리가 1544년경 완성한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사진)은 14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황금기를 기념하는 집단 초상이다. 화면 중앙에는 ‘신곡’의 단테가 앉아 있고, 왼편에는 서정시집 ‘칸초니에레’를 쓴 페트라르카가 초록색 책을 들고 서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얼굴을 내민 이는 ‘데카메론’의 보카치오, 오른쪽에는 시인 카발칸티가 자리한다. 단테는 그에게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책을 펼쳐 보이며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왼쪽 뒤편의 두 인물은 한 세기 뒤 단테를 연구한 란디노와 신플라톤주의 학자 피치노로, 선배들의 대화를 경청한다. 앞의 네 사람은 문학적 영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후대의 두 사람은 당시 유행하던 모자를 썼다. 탁자 위 기물에도 의미가 있다. 천구는 천문학을, 지구본과 컴퍼스는 지리학과 기하학을, 책은 문법과 수사학을 상징한다. 바사리는 이렇게 시와 여러 학문을 한 화면에 배치해 인문주의가 지향한 학문적 이상을 시각화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인물 초상화가 아니다. 라틴어가 주를 이루던 시절, 토스카나의 언어와 문학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단단한 토대가 됐음을 선언하는 문화적 자화상이다. 지역 문화를 세계적 유산으로 키워낸 자긍심. 그것이 토스카나 출신 바사리가 이 그림에 담아낸 진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이은화의 미술시간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프리미엄뷰 고영건의 행복 견문록 이은화의 미술시간 이은화 미술평론가©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