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호미와 노트북을 든 청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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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호미와 노트북을 든 청춘의 시

어스름한 새벽이면 농촌은 가장 먼저 깨어난다. 둑길을 건너는 자전거 소리, 새벽이슬을 털며 밭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고향 제주에서는 등굣길에도 감자를 캐고, 당근을 뽑고, 메밀을 거두고, 귤을 따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흙은 척박하고 물은 귀했지만, 그 시절의 농촌은 이상하리만큼 생기 있었다.

요즘 농촌을 찾을 때마다 그 정겨운 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마을회관 앞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들녘에 선 농업인의 어깨는 예전보다 더 굽어 있다. 통계도 같은 말을 한다. 2024년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200만4000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55.8%이고, 농가 경영주 중 40세 미만은 4601명에 불과하다. 이 수치들 속에는 오랜 세월 땅을 지켜온 부모 세대의 헌신과 농업을 꿈꾸면서도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망설임이 함께 담겨 있다. 냉정한 지표 앞에 기관장으로서는 책임감이,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는 미안함을 지울 수 없다.

청년이 농업을 외면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현장에서 만난 청년 농업인은 누구보다 진지했고, 농업을 사랑했다. 다만, 농업은 낭만이 아니라 생업이고, 정착은 의지만으로 완성할 수 없는 삶의 설계다. 치솟는 농자재 비용, 불안정한 판로, 낯선 농촌 생활의 고됨… 청년이 농업을 원하면서도 섣불리 뿌리내리기를 주저하는 진짜 이유다.

그렇다면 이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도 사회의 책임일 것이다. 다행히 곳곳에서 상생의 싹이 트고 있다. 청년이 땀 흘려 생산한 고품질 쌀과 콩이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든든한 판로를 만나 여행객에게 건강한 한 끼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익산 미륵사지휴게소와 부안휴게소 등지에서 시범 공급하는 이 농산물은 청년 농업인에게 안정적으로 영농을 이어갈 탄탄한 발판이 되고 있다.

이런 마중물을 만나 청년 농업인은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호미’와 ‘노트북’을 함께 들고 농업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소비자 마음을 읽고 현장의 해답을 찾는가 하면,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영상으로 제작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한다. 나아가 낡은 폐교를 생동감 넘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단장해 지역 명소로 일구기도 한다. 땅을 가꾸는 손과 미래를 그리는 손이 하나임을 몸소 보여준다.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폐교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고, 투박한 흙먼지 속에서 미래 비즈니스를 묵묵히 그려가는 청년의 모습은 그 말의 뜻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들이 보여준 도전은 어떤 첨단 기술보다도 경이롭고, 어떤 구호보다도 선명하다.

씨앗은 어두운 흙 속에서 가장 먼저 내일을 준비한다. 지금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같다. 어려워도 미래를 위한 부지런한 걸음이다. 흙먼지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정직한 땀방울로 대지 위에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시(詩)를 써 내려갈 청년 농업인. 그 푸른 꿈이 우리 농촌의 눈부신 내일로 피어나길 온 마음으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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