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흙 위의 작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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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흙 위의 작은 발견

찰스 다윈은 진화론으로 세상을 바꾼 과학자다. 그런 그가 무려 40년간 지렁이 관찰에 천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가령 피아노와 바순을 연주해 지렁이가 소리와 진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유심히 살폈다. 흙 위의 작은 나뭇잎이나 알갱이 등이 어떻게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묻히는지 오랜 시간 기록했다.

1881년 출간된 그의 마지막 저서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은 첫해 판매량이 <종의 기원>을 넘어섰다. 다윈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주제는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상당한 흥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예감은 옳았다. 지렁이가 흙을 갈고 유기물을 섞어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는 그 발견은 오늘날 토양 생태학의 근간이 됐다.

작은 생명체에 그토록 매달리는 그에게 주위에서는 시간 낭비하지 말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유별난 관찰력은 지렁이가 흙을 삼키고 배설하며 땅을 갈아엎는 과정을 통해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위대한 발견의 출발은 대개 비슷하다. 사소한 것도 예사로 보지 않는 눈, 결론에 이를 때까지 놓지 않는 태도.

현직 연구자 시절, 실험실만큼 현장을 오가느라 하루가 짧았다. 요즘도 농업 현장에 가면 허리를 굽힐 일이 많다. 오랫동안 병해충을 연구해 온 터라 흙을 만져보고, 잎 뒷면을 들춰본다. 작업복이 아닌 차림이 어색하지만, 사무실에 앉아서는 알 수 없던 해법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농업의 변화는 작은 관찰이 중대한 시작이 될 때가 많다.

부여의 토마토 재배 현장을 찾았을 때다. 농업인이 “이젠 토마토가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라고 했다. 예전에는 잎이 축 처질 즈음 물을 줬는데, 이제는 토양과 생육 상태를 보며 미리 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 공급 시기 조절만으로 물 사용 총량과 병해 발생까지 줄었다고 한다. “올해는 뒤척이는 날보다 푹 자는 날이 늘었죠.” 예측 가능한 더 나은 내일, 농업인의 밝은 표정은 기술이 가져온 가장 뚜렷한 성과였다.

우리는 흔히 혁신을 새 기계나 복잡한 시스템에서 찾는다. 물론 인공지능, 센서, 데이터는 농업의 미래를 넓히는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기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출발점은 현장이다. 흙 한 줌의 감촉, 이파리의 색과 농업인의 한마디가 때론 데이터보다 빠르게 질문을 던진다. 농업 연구도 결국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다. “왜 이 밭에만 먼저 병이 발생할까?”“올해는 열매가 늦게 달릴까?” 연구의 방향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연구는 이를 검증하고 다듬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렇게 한 농가의 경험이 여러 농가의 해법이 되고 작은 관찰이 농업의 변화로 이어진다.

돌아보면 농업의 역사는 작은 발견의 연속이다. 물길을 한 뼘만 옮기거나 씨앗을 조금 더 눌러 심고, 벌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눈초리가 쌓여 오늘날의 기술이 됐다. 그래서 현장은 가장 오래된 배움터다. 앞으로도 농업은 이 작은 발견들 위에 자랄 것이다. 기술이 정교해지고 시대가 더 빠르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 답은 언제나 현장 가까이에 있다는 것. 오늘도 누군가는 밭 한가운데서 몸을 낮춰 작은 차이를 살핀다. 그 조용한 관찰이 내일의 농업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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