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인사이트]후계자 발표가 승계의 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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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도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다음 리더를 정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갈라지고 갈등이 불거지는 일은 과거 왕조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승계는 단순히 후계자를 정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그를 다음 리더로 받아들이도록 권위와 신뢰를 쌓아줘야 한다. 후계자를 지명하고도 다른 인물을 총애하거나 후계자의 자질을 의심하면 조직은 공식 발표보다 리더의 속내를 읽으려 한다. 조선 숙종과 아들 경종의 관계는 이런 승계의 위험을 보여준다. 1688년(숙종 14년) 후궁 장씨가 숙종의 첫아들을 낳았다. 숙종은 이듬해 왕자에게 원자 칭호를 부여하겠다고 나섰다. 신하들은 중전이 아들을 낳을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만류했다. 집권 세력인 서인에게 남인계 후궁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일은 정치적으로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숙종은 반대하려면 벼슬을 내놓으라며 밀어붙였다. 기사환국으로 집권세력을 남인으로 바꾸고 인현왕후를 폐위한 뒤 장씨를 중전에 올렸다. 왕자도 세자로 책봉하면서 후계 구도를 굳혔다. 숙종은 몇 년 뒤 자신이 만든 구도를 흔들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을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복위시켰다.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됐고, 1701년에는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혐의로 사약을 받았다. 세자는 자리를 지켰지만 어머니와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었다. 왕실에는 숙빈 최씨가 낳은 연잉군과 명빈 박씨가 낳은 연령군도 있었다. 세자를 둘러싼 여건은 갈수록 나빠졌다. 그를 보호하던 소론 원로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1716년 숙종이 병신처분으로 노론에 힘을 실어주면서 세자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노론은 장씨와 남인에 대한 적대감이 컸다. 세자가 장성해서도 후사를 얻지 못하고 병약했던 점도 불안을 키웠다. 결정적인 사건은 1717년 7월에 벌어졌다. 숙종은 좌의정 이이명을 홀로 불러 만났다. 승지와 사관을 배석시켜 대화를 기록하던 관례를 벗어난 ‘정유독대(丁酉獨對)’다. 숙종이 두 왕자를 부탁했다는 이야기부터 세자 교체 의사를 밝혔다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정확한 대화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독대 직후 숙종은 대신들에게 세자가 정무를 대신 처리하는 대리청정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대리청정은 후계자에게 경험을 쌓게 하고 권위를 높여줄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숙종은 경연에서 세자의 자질을 의심하는 발언을 했다. 소론 원로 윤지완이 상경해 조정이 두려워하고 인심이 소란하다며 우려를 전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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