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독파모, 성장통 넘어 AI 3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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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

지난달 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 1차 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단순한 선정과 탈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AI 산업이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3개 기업 선정, 2개 기업 탈락이라는 엇갈린 결과는 표면적으로는 승패의 결정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독자성' 논란 자체가 훨씬 더 깊은 차원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업이 오픈소스 모델의 인코더를 도입했다는 이슈가 화제가 되었으며, 다른 기업은 중국 모델과의 유사성 의혹을 공개 검증으로 해명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들은 표면적으로는 기술적 엄격함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기술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라는 산업의 성숙함을 드러낸 것이다. 단순히 평가의 엄격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업이 국제 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그 기준 자체를 놓고 기술 진영이 진지하게 논쟁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우리 산업의 자주성을 갖춰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독파모의 '독자성 논란'은 분명 성장통이지만,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독자성이 아닌 자주성이다. 기술을 직접 만들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데이터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가, 우리의 규제 환경에 맞는 AI를 선택할 수 있는가, 우리의 가치관과 문화를 담은 AI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기술 독자 개발의 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AI 강국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소버린 AI 시대, 독자성이 아닌 자주성이다

지금 세계는 소버린 AI 시대로 급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 자문사 가트너의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27년까지 전 세계 국가의 35%가 소버린 AI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현재 약 5%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전환율이 불과 2년 내 7배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글로벌 지정학의 변화를 직접 반영하는 것이다.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고 규제가 강화되며, 데이터 주권 및 보안에 대한 각국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 정부들이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향후 AI 산업의 판도도 크게 재편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 '디지털 주권'이 단순히 기술을 직접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주성이란 기술 주권·데이터 주권·정책 자주권을 모두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자국의 기술을 만드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데이터와 규제와 가치관으로 글로벌 생태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계의 개발자들과 기업들이 자신의 기준을 따르도록 주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중국이 오픈소스 기반의 AI 모델들을 글로벌 무대에 공개한 것을 보면 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딥시크와 알리바바 큐웬 같은 중국의 대표 AI 모델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1년 만에 1%에서 15%로 증가시킨 것은 단순히 기술을 직접 만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모델을 통해 전 세계의 개발자들과 스타트업들이 중국의 데이터 기준과 중국의 가치관으로 학습된 AI를 사용하도록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표준 자체를 중국의 기준으로 재편하는 강력한 자주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소버린 AI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규칙을 설정하고 그것을 세계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목표다.

◇다양성이 만드는 자주적 AI 생태계

글로벌 AI 성능 평가기관 AA(Artificial Analysis)의 최신 통계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매우 명확하게 보여준다. 상위 29개 AI 모델 중 한국 기업이 5개를 차지했으며, 이는 미국의 13개, 중국의 6개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놀라운 성과일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다양한 기업들이 고르게 진출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LG 엑사원이 17위를 기록했고, 네이버가 22위, 모티프테크놀로지스가 23위, KT가 24위, 업스테이지가 26위를 차지했다. 이들 각각의 모델들은 한국의 제조 산업 현장, 한국의 금융 규제 환경, 한국 사용자들의 문화와 수요를 깊이 있게 반영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실용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견고한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 (2026. 01. 24.), AAII(Articif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 v4.0, 재구성)글로벌 주요 AI 모델 성능 지수(AAII) 및 대한민국 모델 순위 (출처: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 (2026. 01. 24.), AAII(Articif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 v4.0, 재구성)

그렇다면 1차 평가의 진정한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각 기업이 보여준 차별화된 강점이다. LG AI연구원은 제조업 현장 데이터에 기반한 산업 특화 AI를, SK텔레콤은 통신 인프라와 결합한 실시간 처리 역량을, 업스테이지는 효율적 학습 전략으로 제한된 자원에서도 높은 성능을 입증했다. 네이버의 옴니모달 기술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에 처리하는 통합 능력을 보여주었고, NC AI의 산업 특화 버티컬 모델은 게임 개발에서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와 고급 시뮬레이션 역량의 차별성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각각의 고유한 강점들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만약 선정팀에만 집중하고 다른 역량들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기술 독자성의 경쟁에만 매몰되는 셈이다. 글로벌 소버린 AI 시대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기술의 자립성이 아니라 '다양한 강점들이 공존하는 자주성의 생태계'다. 각 기업의 차별화된 역량을 다른 경로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소버린 AI 전략이 될 것이다.

“5개 팀 모두 승자다”이 선언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글로벌 평가에서 인정받은 한국 AI 모델들이 각자의 역량을 살려 함께 발전할 때, 우리는 글로벌 표준 자체를 우리의 기준으로 재편할 수 있는 진정한 강국이 될 수 있다. 기술 독자 개발에만 집착하면서 다양성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런 위치에 갈 수 없다.

정부와 업계가 같은 마음으로 '한 팀'이 되어, 기술 독자 개발에만 집중하기보다 진정한 자주성을 갖춘 다양한 소버린 AI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다양한 모델들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함께 성장할 때, 대한민국은 단순히 기술을 수입하는 국가가 아니라, 자주성 짙은 우리의 모델을 풀스택으로 수출하는 진정한 AI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충분한 역량이 있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 jhjoh@sw.or.kr

〈필자〉 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5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AI·SW 기업가다. 2021년부터 법정단체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19·20대 회장을 연임하며 AI·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산업AX생태계분과 위원장, 피지컬AI 글로벌 얼라이언스 의장 등 산업 발전을 위해 활발한 정책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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