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뉴프런티어 (25)] 브이에스팜텍 "방사선 치료 효과 높이는 증폭제 개발…해외서 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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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 뉴프런티어 (25)] 브이에스팜텍 "방사선 치료 효과 높이는 증폭제 개발…해외서 더 주목"

"방사선의약품 등 기존 항암제의 효능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항암 증폭 기술로 인류의 암 정복에 기여하겠습니다."

박신영 브이에스팜텍 대표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설립 7년차인 브이에스팜텍은 항암 효과 증폭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텍이다. 본사는 대구다.

이 회사는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항암 기술이 아니라 기존 방사선의약품이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기전의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암전이를 막는데도 효과적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현재 해외기술 이전을 위해 맺은 비밀유지계약(NDA)만 18건에 이른다.

박 대표는 "기존 항암제는 물론 새로 개발 중인 약물과의 병용요법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항암 치료 과정에서 환자 상당수가 겪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서 삶의 질을 높여주고 싶다"고 했다.

샐러리맨 청년의 눈에 띈 신약 기술 보고서

인천 제물포고 출신인 박 대표는 고교시절부터 생물, 화학 과목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두 과목을 모두 배우고 싶어 서울대 응용생물화학과에 진학했다. 각종 물리경시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과학에 재능을 보였다.

대학 시절엔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기업을 연구하는 학내 경영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대학 4학년 때는 대학생과 중고생 간 과외를 매칭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 됐다. 첫 직장은 해운물류회사인 대우로지스틱스였다. 철강 무역 업무를 맡아 무역 실무를 바닥부터 익혔다.

하지만 입사 1년 만에 대우로직스틱스가 파산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로 해운사들이 연쇄 부도를 맞던 시기였다. 실직한 박 대표가 찾은 두번째 직장은 대원제약이었다. 대학 전공을 살려 제약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략기획실에 근무했던 그는 대원제약이 보청기 업체 딜라이트보청기를 인수하는데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대원제약에서 8년을 근무한 박 대표는 이번엔 바이오텍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 대표의 뛰어난 기획력을 알아본 투자사들의 권유를 받고서였다.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에스씨엠생명과학에서 임상시험 업무, GMP 생산시설 구축 등의 업무를 맡았다. 샐러리맨의 마지막 종착지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인 클립스비엔씨였다.

박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것은 우연이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자문을 갔다가 한 건의 특허기술보고서를 본 게 발단이 됐다. 박명진, 임영빈 박사가 만든 용도특허였다. 방사선 치료를 하는 환자에게 특정 약물을 복용하게 했더니 추가적인 부작용 없이 치료 효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표는 무릎을 쳤다. 마침 박 대표가 다른 의약품에 비해 유독 부작용이 심한 항암제에 대안이 없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는 "기존 항암 치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을 찾았다는 확신이 섰다"며 "직접 사업화해보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2018년 11월 브이에스팜텍을 세웠다. 이듬해 2월에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연구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방사선민감제 기술을 확보했다.

"우울증 약의 재발견…방사선치료의 틀 바꾸겠다"

브이에스팜텍의 주력 파이프라인인 'VS-101'은 방사선민감제다. 방사선을 쏘기 전에 환자에게 투약하면 방사선 치료의 종양 살상 효과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치료 대비 방사선 양을 줄여도 효과는 높이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폐 같은 수술 치료가 어려운 부위에 대한 치료도 가능하게 해준다.

박 대표는 "VS-101은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을 줄여주면서 효능도 높여준다"며 "일부 암종에는 제약이 있는 기존 방사선 치료를 모든 고형암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주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VS-101은 약물재창출 사례다. 20년 넘게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던 저분자화합물이다. 부작용은 구토 정도여서 안전성도 검증됐다. 게다가 VS-101은 기존 우울증 약으로 쓰일 때에 비해 용량이 20% 수준에 불과하다.

브이에스팜텍은 임상 1상에서 VS-101의 안전성을 확인했다. 중앙대와 고려대 병원에서 실시한 임상 1상을 올초 완료했다. 임상 1상은 초기 두경부암 환자 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용량별로 두 개의 코호트로 나눠 VS-101을 투약한 후 방사선치료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투약과 방사선치료는 1주일에 5회, 5~7주 동안 지속됐다. 박 대표는 "두 코호트 모두 이상반응을 보인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브이에스팜텍은 임상 1상에서 안전성은 물론 효능까지 확인했다. 박 대표는 "환자 모두에게서 완전관해가 확인됐다"며 "방사선 단독치료시 완전관해율(79%) 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임상 1상에서 확인된 VS-101의 효능은 경쟁약물인 존슨앤드존슨의 'NBTXR3' 보다 훨씬 앞섰다. 미국에서 두경부 편평 세포암(HNSCC)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NBTXR3는 임상 1상에서 완전관해율 50%를 기록했다. 독일 머크가 개발 중이던 제비나판트는 임상 1/2상에서 52%의 완전관해율을 보였으나 독성 문제로 임상 3상을 중단했다.

박 대표는 "임상 1상 결과는 VS-101이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경쟁사들이 주사제로 개발하고 있는 것과 달리 VS-101이 경구제라는 것도 강점"이라고 했다.

"IAP, DDR 동시 저해…암세포 자살 유도하고 DNA 손상 복구는 막고"

VS-101은 두 가지 기전으로 작동한다. 첫째는 세포사멸 저해 단백질(Inhibitor of apoptosis proteon, IAP)의 억제다. 암세포는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IAP 단백질을 과발현시킨다. 일종의 암세포의 생존 회로다. IAP 단백질은 원래 T세포, B세포 등 면역세포의 생존과 활성화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이다.

그런데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생존 원리를 역이용하기 위해 IAP 단백질을 활용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공격 신호를 보내는 사이토카인 TNF가 생존 신호를 보내도록 역할을 바꾸는 게 IAP이기 때문이다. 암세포가 IAP를 과발현하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찾는 신호였던 TNF가 역할을 바꾸기 때문에 암세포를 찾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암세포가 세포사멸 메커니즘을 회피하게 되면, 면역체계는 비정상적인 암세포를 지속적으로 인지하고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만성적인 항원 노출과 억제적인 종양미세환경이 결국은 T세포를 지치게 만든다. 박 대표는 "VS-101은 IAP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암세포가 세포사멸 메커니즘을 회피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했다.

둘째, VS-101은 암세포의 DNA 손상 복구를 방해한다. 우리 몸에선 끊임없이 세포에 DNA 손상이 일어나고, 이를 정상으로 복구하기 위한 정교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암세포도 마찬가지다. 방사선 치료나 화학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암세포의 DNA 일부가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 때 암세포는 다양한 경로로 손상된 DNA의 복구를 시도한다.

VS-101은 복구 단백질인 PARP와 RAD51을 동시에 저해하는 방식으로 암세포의 손상 DNA 복구를 막는다. 박 대표는 "PARP와 RAD51이 저해되면 DNA가 손상된 암세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사멸하게 된다"고 했다.

PARP는 DNA 단일가닥 절단(SSB)을 감지하고 복구를 유도하는 단백질이다. RAD51은 DNA 이중가닥 절단(DSB) 복구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복구 단백질이다.

"교모세포종, 유방암 등으로 적응증 확대"

브이에스팜텍은 VS-101을 두경부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박 대표는 "두경부암은 표준치료법상 항암제를 사용하지 않는 방사선 단독치료군이 있어 이를 적응증으로 하는 방사선 민감제를 우선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고 했다.

브이에스팜텍은 2023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VS-101의 임상 2상 시험 승인을 받았다. 올해 3분기에 MD앤더슨, 예일대 의대, 뉴욕대 의대, 캔자스병원 등에서 환자 모집을 시작했다. 내년 말 임상 종료가 목표다. 박 대표는 “환자 투약 대상자 선정을 시작했다"며 "조만간 임상 중간 데이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브이에스팜텍은 지난 11월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미국법인을 통해 VS-101을 교모세포종 치료제로 개발할 계획이다. 현지에서 투자 유치를 받아 미국 임상 2상에 나설 예정이다. FDA로부터는 지난 2월 임상 2상 승인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박 대표는 "교모세포종은 테모졸로마이드와의 병용 복합제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 머크(MSD), 프랑스 세르비에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브이에스팜텍은 신규 항암제와 VS-101의 병용 연구 범위도 넓혀나갈 계획이다. 방사선 의약품뿐 아니라 면역항암제, 마이크로바이옴 등과 병용하는 연구를 고려대 의대, 중앙대 약대 등과 손잡고 진행 중이다.

유방암으로는 지난해 FDA로부터 임상 2a상 승인을 받았다. 박 대표는 "VS-501이 암 전이를 막는데 효과적이어서 전이가 빠르게 일어나는 유방암 치료에 병용시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한다"며 "현재 인하대 의대 등과 협력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진출 본격화…글로벌 빅딜 기대"

브이에스팜텍은 빅파마와의 기술수출 계약도 기대하고 있다. 박 대표는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사우디 중국 러시아 등의 제약·바이오 기업 여러 곳과 논의를 하고 있다"며 "임상 2상 데이터가 나오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브이에스팜텍은 글로벌 방사선 민감제의 잠재 시장 규모가 10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방사선 치료 환자는 1200만명으로 PD-1 면역항암제 치료 환자수 800만명 보다 더 많아 시장 기회가 크다고 판단해서다. 박 대표는 "두경부암과 유방암 등 두가지 적응증에서만 VS-101의 연매출액이 1조3000억원으로 평가된다"며 "VS-101의 기술 가치는 3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브이에스팜텍은 VS-101이 빅파마 세엘진의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 같은 세계적 약물재창출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레블리미드는 1957년 진정제로 출시됐다가 부작용 때문에 4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했지만 1996년 다발성 골수종에 효과가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 다시 개발돼 2015년 FDA의 허가 문턱을 통과했고 100조원이 넘는 누적매출을 올린 블록버스터가 됐다.

브이에스팜텍은 기술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아온 바이오텍이다. 2019년 대한민국지식산업대전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아기유니콘 200에 선정됐다. 2023년에는 중소기업 R&D 우수성과 50선에 뽑혔다. 지난해 초에는 존슨앤드존슨의 제이랩스(JLABS)에 선정됐다.

브이에스팜텍은 내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리즈B 브릿지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 유치액은 178억원이다.

박 대표는 브이에스팜텍을 기술사업화 전문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핵심 기술을 들여와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발전시켜온 사업 모델을 확장해나겠다는 의미다. 그는 "대학, 연구소 등의 연구성과를 사업화하는 파트너가 돼 우리나라의 바이오 산학연 생태계를 강화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박영태 바이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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