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의 고난도는 영국 언론에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영국 BBC방송은 “고대 문자 해독 수준” “미친 시험”이라면서 올 수능 영어 문제를 소개했다. 이런 악명 높은 ‘8시간 연속 시험 마라톤’을 준비하는 데 한국 청소년들은 평생을 바친다고도 했다. 특히 비디오 게임 용어를 소재로 한 39번 문항을 공개했는데, “잘난 척하는 말장난”이다,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글쓰기”라는 독자들의 비판도 기사에 실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수능 영어의 세 문항을 소개한 기사에는 350여 개 댓글이 달리는 등 일반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내가 의대 우등 졸업생인데 한 개밖에 못 맞혔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에 응시한 영국 수재들이나 풀 수 있을 정도”라는 반응이 나왔다. 가디언은 이번 수능에서 논란이 된 지문 속 ‘컬처테인먼트(culturtainment)’란 합성어에 주목했다. 그 말을 만든 영국인 교수는 통상적 표현이 아니어서 시험에 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영어 종주국도 기겁하는 수능의 난해함은 영어만의 얘기가 아니다. 학업 능력보단 잔기술로 정답을 찾는 경주에 가깝다는 것이다. 학원가에선 지문을 이해하지 않고도 문제 속 키워드를 지문에서 빠르게 찾아 매칭하는 ‘눈알 굴리기’ 기술을 가르친다고 한다. 차분하게 문제를 풀다간 시험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유형별로 도식화한 뒤 수백 번 문제 풀이 훈련도 반복한다. 시험 기술로 무장한 수험생들을 상대하는 출제자들도 답답할 것이다. 지난 32년간 누적된 기출문제는 물론이고, 시중의 어떤 문제집과도 안 겹치는 문제를 내야 한다.▷그런 토양에서 생겨난 수능 문제들은 전문가들도 쩔쩔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올 과학탐구 문제를 풀어본 KAIST 총장은 “풀이 기술 없인 손도 못 대겠다”며 포기했고, 유명 소설가는 “이런 국어 문제를 다 맞힐 정도면 대학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입용 시험인데 정작 교수가 풀기 어렵고, 다 맞히면 대학 갈 필요도 없다니 수능은 도대체 뭘 평가하려는 시험인지 궁금해진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1 month ago
6
![[만물상] 건강수명보다 활력수명](https://www.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기고] 주택 공급, 숫자 넘어 '국민 신뢰'를 짓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