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소 ‘민간의 자율과 창의’라는 신념을 견지해 왔다. 이 원칙은 새로 출범한 기획처가 지향해야 할 지표라고 본다. 정부가 민간 위에 군림하면서 자원을 배분하던 시대는 지났다. 기획처는 책상 위에서 예산 숫자를 만지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 역동하는 현장에 뿌리를 둔 전략기획본부가 돼야 한다.
지금 기획처 앞에는 세 가지 핵심적인 과제가 놓여 있다.
첫째, 기획과 예산의 유기적인 결합이다. 기획과 예산은 대한민국 행정의 역사 속에서 늘 한 몸으로 움직여 온 국가 운영의 두 축이다. 올해 기획처가 18년 만에 다시 출범한 것은 이 두 가지 축의 유기적 결합을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히 해 국가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다. 기획이 결여된 예산은 낭비로 흐르기 쉽고, 예산이 뒷받침하지 않는 기획은 실행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 비전은 예산이라는 정책 수단에 정확히 반영될 때 비로소 구현된다. 이를 통해 미래 성장 분야에 민간이 자유롭게 창의적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방향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둘째, 현장 중심의 재정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필자는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공직자들이 현장을 멀리하고 책상에만 앉아 있는 행태를 비판하며 “장관도 청장도 구정물 통에 발을 담그라”고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여러 부처에 산재한 유사·중복 사업을 정비하고 재정 지출의 비효율을 걷어내는 구조조정은 결코 관료적 편의주의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실제 수혜자인 국민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현장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군살을 걷어낸 다음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부문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똑똑한 재정’이 기획처가 지향해야 할 종착지다.
셋째, ‘성과’라는 결과물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예산 편성은 단순히 돈의 배분이 아니라 국가의 자원을 어디에 우선 투자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독단은 금물이다. 기획처는 재정 운용의 전 과정에서 민간의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협업과 소통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필자는 “한 푼의 예산도 성과 없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잣대를 고수해 왔다. 예산을 단순히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그 예산이 현장에서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를 국민께 투명하게 보고해야 한다. 성과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일몰하고, 이를 통해 절감한 재원을 민간의 활력을 돋우는 데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이번 기획처의 출범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엄중하다. 혁신의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두려워해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 경제는 삼류로 추락할 것이다. ‘원칙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는 각오로 기획처 후배 공직자들이 투철한 소명 의식을 갖고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끄는 선봉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전윤철 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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