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늙은 방산은 이제 끝"…세계 뒤흔든 30대 CEO의 도발 [강해령의 테크앤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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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2.01 11:44 수정2025.12.01 11:44

라팔 모드제프스키 아이싸이 CEO가 최근 서울 모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SAR 위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솔 기자

라팔 모드제프스키 아이싸이 CEO가 최근 서울 모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SAR 위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솔 기자

핀란드 스타트업 아이싸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가 됐다. 우주에 띄운 저궤도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으로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실시간 포착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가 됐기 때문이다. 에어버스, 록히드 마틴 등 위성 강호들을 제친 예상 밖의 돌풍이었다.

최근 서울을 찾은 라팔 모드제프스키 아이싸이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2014년 7평 방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 전장의 '눈'을 만들고 있는 30대 CEO의 눈은 천진난만했다. 그러나 위성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의 눈빛은 새삼 또렷해졌다.

▶어떤 업무 때문에 한국을 찾으셨나요?

“저는 1년에 한 번 한국을 방문합니다. 이번엔 특히 LIG 넥스원이 대전하우스에 위성·레이저 체계조립동을 새롭게 열어서 개소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구본상 LIG넥스원 회장이 핀란드 아이싸이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공장이 준비되면 당신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하셨거든요. 그 약속을 지키신 셈이죠.

▶한국도 2031년을 목표로 SAR 위성을 개발 중입니다. 아이싸이 SAR 위성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실전 테스트 경험’이 가장 차별화됐습니다. 저희 위성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3년 넘게 운용됐거든요. 훈련과 실전은 전혀 다르죠. 누구도 전장 경험 없이 장비의 진짜 성능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럽의 안보 위협은 저희를 매우 ‘빠른’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올해 3월 저희는 네덜란드와 계약을 했는데요. 첫 위성은 6개월 안에 발사됐죠.

아이싸이는 2025년 위성을 주문받으면 2025년에 모두 인도합니다. 이런 속도로 공급할 수 있는 회사는 사실상 저희뿐입니다.“

[단독 인터뷰] "늙은 방산은 이제 끝"…세계 뒤흔든 30대 CEO의 도발 [강해령의 테크앤더시티]

▶아이싸이는 신흥 ‘디펜스 테크’ 기업으로 평가받는데요. 기존 방산 업체들만으로는 국방 혁신이 불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네, 충분하지 않습니다. 현재 방산 산업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하이테크 기술보다 훨씬 뒤처져 있거든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애플이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하는 주기는 1년이죠? 하지만 방산업은 어떤가요. 정부가 무기 스펙을 제안하면 기업이 “5년 뒤 납품하겠다”고 합니다. 5년 뒤면 그 사양은 이미 낡아 있죠.

스페이스X가 ULA(United Launch Alliance)를 완전히 앞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계약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연구개발(R&D)을 계속 밀어 붙였기 때문입니다.

안두릴과 팔란티어도, 유럽에서는 아이싸이도 이런 방식으로 기존 방산 거물들을 꺾고 있습니다."

아이싸이 위성과 특징. 사진=한경 DB

아이싸이 위성과 특징. 사진=한경 DB

▶지금 아이싸이는 4세대 위성을 양산할 수 있죠. 4.5세대·5세대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이싸이는 약 18개월마다 새 제품을 발표합니다. 그래서 5세대는 이미 계획돼 있고, 목표는 2026년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신제품 개발을 ‘목표 시점’으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팀이 가능한 빠르게 혁신하면, 그 기간동안 개발한 모든 것을 묶어서 발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것이 기존 방산 체계와의 차별화 포인트고 엔지니어링 효율도 더 높더라고요."

▶SAR 위성 뿐만 아니라 드론 사업 진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성층권에서 띄워지는 '고고도 정보수집 드론'입니다. 올해 첫 시험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준비가 되면 한국에도 들여올 계획입니다.”

▶파트리아·노키아 등 핀란드 전통의 강호와도 협업하고 있습니까?

"네, 협업하고 있고 향후 파트너십도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싸이는 사실상 ‘핀란드 회사’라기보다 ‘유럽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핀란드만으로는 아이싸이 같은 회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직원도, 공급망도, 고객도 대부분 유럽 전체에 기반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핀란드·폴란드·독일·그리스 등에 위성을 공급했고, 각국의 위성을 군집 형식으로 묶어 서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방산 유럽 연합'을 주도하는 거죠."

▶아이싸이는 위성의 조그마한 '케이블'까지 직접 만든다고 들었는데요. 공급망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저희는 수요가 많은 지역에 생산거점을 두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보고 UAE의 스페이스42와 합작법인을 만들었고요.

한국과 제대로 협력하게 된다면 이곳에도 생산 라인을 두게 될 것입니다."

▶아이싸이는 한국 매출이 있나요?

“있죠. 지난 2~3년 동안 한국 고객들에게 안정적으로 판매해왔고, 규모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출 확대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저희 사명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하던 것처럼 한국에도 필요한 기술을 제공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계약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엔지니어로서 세상에 필요한 기술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핀란드 정부의 스타트업·방산 정책은 한국과 비교해 어떤가요?

"핀란드 정부는 방산에 국한되지 않고 혁신 전반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스마트 링 기업인 오우라 헬스나 양자컴퓨팅 기업 IQM 같은 대형 테크 스타트업이 10년 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규제 완화에서 비롯됐죠.

또 가장 중요한 건 정부가 적극적으로 스타트업과 계약을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대기업에만 계약을 몰아주면 스타트업 혁신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기존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인식 아래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진짜 혁신이 생깁니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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