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X 동아닷컴 공동기획] 서울시와 서울경제진흥원(SBA)은 창업의 요람 서울창업허브를 운영한다. 유망 스타트업을 투자자와 함께 선발하고, 창업지원 전문가와 전문기관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더해 이들의 성장을 이끈다. 대·중견 기업과 스타트업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개방형 혁신도 포함한다. 동아닷컴은 서울시, SBA와 함께 서울창업허브 공덕에서 두각을 나타낸 우수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IT동아 박귀임 기자] “자극적인 채소의 맛이 지구를 구합니다.”
채식은 더 이상 소수의 선택이 아니다. 환경 문제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은 여전히 '맛없거나 어렵고 불편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남아 있다. 급진적 채식주의자의 엄격한 기준과 한정적인 메뉴 선택지는 일반인이 채식에 접근하는 데도 장벽으로 작용한다.
김제은 배드캐럿 대표 / 출처=IT동아
이러한 채식의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2022년 설립된 배드캐럿이다. 김제은 배드캐럿 대표를 만나 채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국산 고사리로 시작된 채식 대중화 여정
배드캐럿은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채식 밀키트와 소스를 전문으로 개발 및 판매한다. 독특한 사명에는 김제은 대표의 명확한 철학이 담겨 있다. '배드(Bad)'는 자극적이고 정크한 맛을, '캐럿(Carrot)'은 당근이라는 뜻보다 채소 전체를 상징한다. 김제은 대표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악당들이 지구를 지키듯이 대부분 먹기 꺼리는 채소가 우리 몸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기존 채식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재미있고 접근하기 쉬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토마토나 브로콜리보다 캐럿이 영단어 배드와 잘 어울렸다"고 설명했다.
김제은 대표는 채식 대중화를 꿈꾼다. 자극적이고 끌리는 맛으로 채식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채식 제품을 만드는 이유다. 이를 위해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채식이라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선택하는 음식'을 지향한다.
배드캐럿 대표 제품인 고사리 오일 파스타 소스 / 출처=배드캐럿
배드캐럿의 대표 제품은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든 ‘고사리 오일 파스타 소스’다. 국산 고사리의 풍미와 건고추의 매콤함이 조화롭다. 파스타는 물론 리조또, 감바스, 김밥, 샌드위치, 라면 등 취양껏 활용할 수 있다. 밀키트 제품은 고사리 오일 소스를 바탕으로 만든 ‘고사리 누들 떡볶이’와 ‘고사리 들깨 비빔면’이다. 고사리 누들 떡볶이는 국산 고사리로 만든 소스에 쫄깃한 떡이 잘 어울리며, 라면만큼 쉽게 만들 수 있다. 고사리 들깨 비빔면의 경우 국산 들깨와 병아리콩, 그리고 직접 만든 채소 소스를 넣어 풍미가 깊다.
고사리를 주력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김제은 대표는 조리를 전공하면서 고사리의 매력에 빠졌다. 고사리 특유의 감칠맛은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들 수 있었다. 건강하면서도 맛있게 채식 대중화를 이끌 수 있는 식재료가 고사리라고 판단했다.
또 배드캐럿 창업 배경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김제은 대표의 채식주의자 가족이 있었다. 김제은 대표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가족도 맛볼 수 있도록 수출 가능한 채식 제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한 것. 김제은 대표는 "개인적인 이유로 채식 제품을 수출하고 싶었다. 거창하게 K-푸드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채식 대중화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업 초기부터 서울시·SBA 도움받아 지속 성장
식품 제조로 시작한 배드캐럿의 첫 관문은 레시피 표준화와 규격화된 생산 공간 확보였다. 김제은 대표는 서울시와 SBA에서 운영한 서울창업허브 키친인큐베이터 제조주방 3기에 지원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선발된 후 전문 제조 주방을 통해 R&D부터 시제품 테스트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배드캐럿은 창업 초기부터 서울시와 SBA의 도움을 받아 지속 성장했다 / 출처=IT동아
김제은 대표는 "조리를 전공했지만 식품 제조 분야는 완전히 달랐다. 조리할 때는 짜면 물을 넣어 조절할 수 있지만, 제조는 용량과 배합에 맞춰 생산하는 방식이라 식품 공학에 가까웠다.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다행히 서울시와 SBA의 도움을 받아 전문 제조 주방에서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서울창업허브 구내식당에서 시제품 테스트를 반복하며 개선 작업을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창업 초기부터 서울시와 SBA의 지원을 받은 배드캐럿은 2021년 첫 제품인 '고사리 마늘 페스토'를 완성했다. 첫 크라우드펀딩 역시 서울시와 SBA의 도움이 컸다. 당시 220명의 후원자와 6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지만, 대부분 고객이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김제은 대표는 고객의 의견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즉시 용도를 파스타로 명확히 한 고사리 오일 파스타 소스로 제품을 전환했다. 해당 제품은 2022년 정식 출시했고, 현재 배드캐럿을 대표하게 됐다.
배드캐럿은 2023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했다. SBA 해외 수출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현지 바이어와 연결된 것. 싱가포르는 채식 인구가 많아 바이어의 반응이 좋았고, 수출 후에도 긍정적인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실온보다 3배 이상 높은 냉동 제품의 물류비는 지속적인 수출의 걸림돌이었다. 김제은 대표는 "싱가포르 바이어가 비용 절감을 위해 식재료를 외국산으로 바꾸길 요구했다. 배드캐럿의 근간이 흔들리는 결정이라고 생각해 수출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김제은 대표는 첫 수출을 통해 실온 제품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실온 유통이 가능한 레토르트 제품 개발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실온 제품은 멸균 과정에서 고온·고압 처리로 냉동 제품보다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2024년 태국 식품 박람회에서 고사리 소스의 실온 제품을 처음 선보였을 때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제은 대표는 "고사리 29% 함유량은 배드캐럿 제품이 유일하다. 그래서 실온 제품 역시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제은 대표는 올해 6월 미국 푸드 박람회에도 부스를 마련했다. 이때 만난 바이어를 통해 11월 미국 한식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할 수 있었다. 최근 수출 1만 달러를 달성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매장 운영으로 경쟁력 확보
배드캐럿은 2024년부터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외식 브랜드 '고사리익스프레스'를 운영 중이다. 배드캐럿의 고사리 소스 제품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인다. 10석 규모의 작은 공간이지만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대기 고객이 이어진다. 특히 202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선정,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배드캐럿가 운영 중인 외식 브랜드 고사리익스프레스는 202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선정됐다 / 출처=IT동아
고사리익스프레스는 김제은 대표가 배드캐럿의 제품 활용도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앞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팝업 스토어 형태로 열었던 것을 정식 외식 매장으로 운영하는 것. 매장은 신메뉴 테스트와 고객 반응을 즉각 확인하는 살아있는 R&D 센터 역할을 한다.
김제은 대표는 "배드캐럿은 소규모 스타트업이라 자원이 한정적이다. 소스 하나로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매장도 제품도 모두 잘되고 있다"면서 "매장에서 먼저 출시한 ‘쑥갓 누들’ 메뉴도 고객 반응이 좋아 현재 제품으로 개발해 판매 중이다.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여러 메뉴를 시도하고 제품화하는 등 선순환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배드캐럿의 핵심 경쟁력은 국산 농산물 활용이다. 제품 생산을 위해 연간 3~5톤의 국산 고사리를 사용한다. 고사리를 고온에 볶아 풍미와 식감을 내는 독자적인 제조 방법으로 특허도 확보, 차별화를 꾀한다.
김제은 대표는 "배드캐럿 제품의 고사리가 '고기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고온 볶음으로 감칠맛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라면서 "제품 개발 시 식물성 원료, 국산 농산물, 채소의 자극적인 감칠맛 등 3가지 원칙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국산 농산물 고집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김제은 대표는 제주도에서 직접 고사리를 따는 체험을 하고, 한국임업진흥원과 협업해 산에 농작물을 심는 등 지역 농가 살리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제은 대표는 "국산 농산물이 수입 농산물에 가려져 빛을 못 본다. 판매량이 떨어지니 가격 안정화도 어렵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배드캐럿을 운영하는 동안만이라도 국산 농산물만 사용해 농가를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체 생산 공장부터 프랜차이즈 운영까지 계획
배드캐럿은 채식 대중화를 위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도 준비 중이다 / 출처=IT동아
배드캐럿의 다음 도전 과제는 실온 제품 라인업 확대와 자체 생산 공장 설립이다. 현재 OEM 방식으로 인천 제조업체에서 생산 중이지만, 할랄·코셔 등 다양한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자체 공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김제은 대표는 "매장 고객 중 외국인이 꽤 많다. 유럽에서도 협업 제의가 들어올 정도다. 비건 인증은 받았지만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할랄이나 코셔 인증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체 공장이 필수라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배드캐럿은 궁극적으로 프랜차이즈 운영을 목표한다. 고사리익스프레스 이외에 또 다른 매장을 추가로 열어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운영에 앞서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이다. 김제은 대표는 "채식 대중화를 위해서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필요하다. 매장 고객 연령대도 다양하고 프랜차이즈 문의도 많다"면서 "2024년 서울창업허브에서 진행한 키친인큐베이터 프랜차이저 1기 과정을 이수했다. 이를 통해 프랜차이즈 관련 지식과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배드캐럿의 슬로건 '자극적인 채소의 맛이 지구를 구한다'는 여전히 유효하다. 매장에서는 한 달에 약 18톤의 탄소를 절감하고, 그 금액을 강원도 인제 탄소 숲 보호에 기부한다. 매장을 시장 근처에 연 이유도 농산물을 신속히 조달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김제은 대표는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이어 "마케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심이다. 제품 출시 초기 '이게 무슨 채식이냐'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도 채식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 진심이 조금씩 통하는 것 같다. 채식으로 유입하는 길목에 배드캐럿이 있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맛과 재미로 더 넓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배드캐럿의 전략. 미쉐린 가이드 선정 매장과 글로벌 수출이라는 성과가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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