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세계은행의 최근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 보고서는 2026~2027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약 2.5% 수준으로 전망했다. 이는 과거 10년 평균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 역시 같은 기간 글로벌 경제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4~5년간 빠르게 확산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영향, 국가별 정책 불확실성, 그로 인한 무역 긴장이 서로 맞물리며 강화되고 있다. 관련한 노동시장의 축소와 재편, 투자 판단의 보수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은 개별 변수로 설명되기보다 하나의 조건 변화로 읽을 필요가 있다. 기업 환경은 점진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이전과 다른 전제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필자는 지난 수년간 함께 일해 온 한 글로벌 소비재 기업의 연례보고서에서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한 문장을 기억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일상의 기쁨을 만들어온 브랜드다.” 이 문장은 수십년간 실제로 작동해왔다. 특정 카테고리에서, 특정 소비자 집단 안에서 이 문장은 성과로 증명됐다. 그러나 기존 소비자의 노화, 저출산으로 인한 신규 소비층 축소로 촉발된 내수 시장의 구조적 약화는 정책 불안정성과 무역 환경 변화로 인한 원가 상승, 해외 시장 성장의 불투명성과 겹치며 그 의미를 빠르게 잃었다.
비슷한 장면은 조직의 다른 층위에서도 관찰된다. 해외 시장에 기존 제품 출시를 검토하던 한 리더는 신규 시장의 반응 가능성보다, 그 선택이 해당 기업이 그동안 성공해온 방식과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먼저 가늠한다. 또 다른 부서의 리더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브랜드를 다루지만, 제품의 본래 정체성을 설명하려 할수록 조직이 축적해온 성공 공식과의 간극을 더 선명하게 확인한다. 겉으로 보면 이들은 서로 다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쪽은 시장 진입을, 다른 한쪽은 브랜드 정체성을, 조직 차원에서는 장기 성장 전략을 고민한다. 그러나 이 고민들은 하나의 공통된 기준, 즉 과거의 성공 방식 앞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변화인지 판단해온 보이지 않는 기준이, 변해버린 시장 조건 앞에서 더 이상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앤 본(Diane Vaughan)은 이를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각적인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위험하거나 예외로 여겨졌던 판단이 점차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다. 그는 이 과정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조직 내부 기준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붕괴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시장은 다르다” “이 브랜드는 예외다” “이번에는 조건이 다르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이 반복될수록, 조직 내부에서는 그것이 정상적인 판단으로 굳어지기 쉽다.
중요한 변곡점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변화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기준이 더 이상 현재의 조건과 맞지 않음에도 계속 유지될 때 균열은 커진다. 이는 판단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 체계와 기준이 현실의 변화보다 늦게 움직이는 조직의 구조적 한계에 가깝다. 인간과 조직은 '조건의 변화'보다 '경험의 연속성'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업 리더라면, 지금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방식이 시장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시대가 허용해준 구조 덕분이었는지를 26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핵심 고객이라 불러온 이들은 여전히 같은 생활 조건과 소비 맥락 속에 있는지, 글로벌 확장은 성장을 위한 전략인지 아니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관성적 선택이 되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카테고리에 대한 투자는 소비자의 변화에서 출발했는지, 아니면 내부 성장 압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나아가 조직 내에서 “예전엔 통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는 말이 안전하게 공유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의사결정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 결정에 대한 설명 책임은 더 분명해졌는지, 아니면 오히려 흐려졌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2026년은 변화를 완료하는 해가 아닌 지금까지의 기준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지는 해가 될 것이다. 이 질문들을 지금 던지지 않는다면, 그 답은 2027년에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변화의 성패는 결심이 아닌 기준을 점검할 시간을 확보했는지에 달려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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