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 못 따라가는 정책 담당자들의 탁상공론 여전
'부동산은 문화'…한국인 DNA 외면이 강남불패 불러
신규매입시 보유세, 명문대 정원 할당 등 대안 필요
지을 땅 없는 서울보다 제3의 강남 건설이 해법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박근혜 정부 시절인 10년 전, 서울의 한 부동산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정부가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리겠다며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독려하던 때였다. 강의 시간에 "서울 아파트값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던져지자 예측은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속칭 '업자'로 불리는 건설업계 사람들은 상승을, 그들이 '먹물'이라 부르는 학자와 기자, 공무원들은 하락을 점쳤다.
그때 한 재건축 업체 사장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고 보세요. 압구정, 반포, 한남동은 10년 안에 50억, 70억, 100억 갑니다." 먹물들은 웃고 넘겼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이미지 확대
(서울=연합뉴스)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이 다시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는 가운데 8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 및 주택단지들.
최근 다시 만난 그에게 서울 부동산의 미래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맞혔느냐고 묻자 "간단하지요"라며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확고하다 ▲한국에는 수백억·수천억원대의 부자가 많다 ▲아파트 투기로 부를 쌓은 70·80세대의 자산 세습이 본격화됐다 ▲10억원 대출쯤은 가볍게 감당할 맞벌이 고소득층이 늘었다 ▲한국인 특유의 비교·서열 문화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은 국토의 0.6%에 1천만명이 몰린 도시다. 77억원짜리 전세, 4천만원짜리 월세 계약이 성사될 만큼 현금 부자는 넘쳐난다. 그런데 새로 지을 땅은 없고, 재개발·재건축은 규제와 주민 갈등에 가로막혀 있다. 강북 변두리에 전철 하나 놓는 일조차 더디다. 이러니 금리를 아무리 올려도 강남 아파트값이 떨어질 리 없다. 한강변 아파트에 '패닉바잉'이 벌어지는 이유다.
더 큰 착각은 집값 하락을 단순한 경제 공식으로 보는 태도다. 보유세를 올리고 전세를 없애면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돼 월세만 치솟는다. 청년의 내 집 마련은 더 멀어진다. 경제학의 수요·공급론은 서울로 인구가 쏠리는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엔 여전히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 산다"는 신념이 강하다. 한국 부동산은 경제가 아니라 '문화'의 영역이다. '강남 폭락'을 외치는 이들이 놓치는 건 이 집단 심리다.
이미지 확대
(고양=연합뉴스) 가을 일산 호수공원 전경. 같은 1기 신도시인 분당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GTX 개통에도 큰 폭 오름세 없는 일산.
지금의 구조는 세대 간 단절과 부의 세습을 가속화하며 중산층까지 양극화하고 있다. 그러나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남과 강변을 대체할 '제3의 강남'을 만드는 일이다. 일산 같은 베드타운이 아닌, 분당·판교처럼 교육·산업·문화·의료가 결합한 자족형 신경제권이 필요하다. 일자리와 학교, 문화가 함께 있어야 사람들이 머문다.
또 하나의 축은 교육이다. 강남의 절반은 사교육이 만든 가격이다. 한국은행 총재의 제안대로 지역·학교별 명문대 정원 할당제를 도입한다면 강남의 미친 전셋값은 어느 정도 잡힐 것이다.
세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규 매입가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식 보유세 도입 등 조세 저항을 최소화할 현실적 대안도 검토할 만하다. 똘똘한 한 채 쏠림을 완화하려면 다주택자에 대한 재산세·양도세·취득세를 완화해 거래를 늘려야 한다. 부자를 적으로 돌리기보다 그들이 '부동산 밖' 투자처로 눈길을 돌리게 해야 한다.
결국 강남 불패 신화를 깨는 건 금리도, 세금도 아니다. 국가 공간 구조를 새로 설계하려는 의지다. "집값을 잡겠다"가 아니라 "강남에 살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할 때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1월04일 07시30분 송고



![머리카락보다 얇고 인체 완벽 밀착…'THIN'이 신체 모니터링 [지금은 과학]](https://image.inews24.com/v1/54dfa03c1c4322.jpg)

![SK하이닉스 "엔비디아와 차세대 SSD 개발 중…속도 최대 10배 빠르다" [강해령의 테크앤더시티]](https://img.hankyung.com/photo/202512/01.42641375.1.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