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시대'에 부는 니체 바람…나만의 가치 찾는 '초인'으로 생존하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이 재조명받고 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의 별 재미 없고 고리타분한 철학서와 생애가 유행에 민감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주목받고 있으니 예사롭지 않다. 작년부터 서점가 인문·철학 코너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니체 관련 서적들이라고 한다. 이 기간 니체 신간만 수십 종이 앞다퉈 쏟아졌다. 원전의 '리커버 에디션'(디자인 변경판)도 있지만 핵심 개념만 쉽게 재해석한 기획 에세이와 잠언집도 많다. 니체 유행을 이끄는 독자는 '4050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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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실존 명제 중 가장 유명한 건 '신은 죽었다'이다. 절대자, 즉 절대적 진리가 실종된 세상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실존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자기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유명 트로트 가수가 부른 히트곡 제목으로 일반인에 더 잘 알려졌다. '위버멘쉬'라는 개념도 유명하다. 우리말로는 '초인', '초월자' 정도로 번역된다. 인생의 허무와 불합리를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실존적 인간의 전형을 뜻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니체에 쏠린 이유는 뭘까. 니체 직전엔 한동안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열풍이 국내에 불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과 관련된 서적과 유튜브 영상물들이 흘러넘쳤다. 쇼펜하우어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독일 철학 탐구는 진지한 지적 활동과 자기 성찰에 연관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사회학, 심리학 등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삶의 고통에 주목하고 '신의 부재'를 말하는 두 철학자에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가치 체계의 혼란, 개인화의 가속, 타인과 비교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이 니체로부터 지혜를 구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흔들릴 때, 가족과 조직이란 울타리가 느슨해져 지켜줄 보호막이 없다고 느낄 때, 소셜미디어 속 화려한 타인의 삶과 비교되는 자기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 우리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때로는 자기 정체성마저 의심하고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처럼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각자도생 사회에서 니체의 철학은 '정서적 방어기제'로 인식되는 듯하다. 불확실하고 가혹한 현실에서도 자기 가치를 지키는 '초인'이 됨으로써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다. 니체의 메시지를 '생존 지침서'로 활용하는 셈이다. 니체는 상처와 고통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드는 필수 원동력으로 본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는 인생이라도 그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는 체념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가혹한 고통마저도 주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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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개념과 범위, 결혼과 이혼관, 직장의 질서, 사회적 계급 및 성공에 대한 정의, 심지어 성별의 개념 등까지 급속도로 달라졌다. 불과 10여년 전과 비교해도 변화 폭이 너무 커 따라가기가 버겁다. 그 속도가 빠르니 뭐가 맞는 건지, 지금 잘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는 "믿을 건 돈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이 주식과 코인 투자에 몰두하는 데엔 이런 심리가 반영됐을지 모른다. 그러다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정신적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생긴다. 현대인들은 이토록 외롭고 불안한 세상에서 또 한 번 생존본능을 발휘해 살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먼지 쌓인 채 묵혀둔 고전(古典)을 다시 뒤지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니체처럼 타인이 만든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우뚝 서서 인생의 '온전한 주재자'로 항해하는 '초인'이 되고 싶어 한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5월28일 09시4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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