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재시동 걸린 호르무즈 우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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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에 호르무즈 또 막히자 걸프국들 우회로 검토…"지정학 인질 그만"

UAE·사우디, 인도양 직통 운하 건설 경쟁…이라크 등도 육상 우회로 계획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중동 석유를 세계로 나르는 해상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또다시 막히자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이 한동안 포기한 듯했던 우회로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란이 호르무즈로 오가는 선박들을 위협해 사실상 봉쇄 효과가 나타난 데 이어 이번엔 미국이 호르무즈 역봉쇄에 착수하자 물길 차단이 장기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오래전부터 중동 정세가 불안정할 때마다 '호르무즈 인질극'의 희생양이 돼온 전철을 되풀이하기 싫은 심리도 작용하는 모양새다.

이미지 확대 호르무즈 해협 앞에서 대기 중인 유조선들

호르무즈 해협 앞에서 대기 중인 유조선들

호르무즈 해협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오만 무스카트 앞바다에 발이 묶여 있는 유조선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DB 금지]

실제로 지난달 말부터 호르무즈가 사실상 막힌 뒤 걸프 국가들이 겪은 경제적 피해는 막대하다. 원유와 가스 수출이 거의 중단됐고 유조선 보험료마저 폭등하면서 전체적으로 약 3천억 달러가량의 손해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큰 피해액을 기록했고, 아랍에미리트(UAE)가 받은 타격도 그 못지않게 크다. 다른 친미 중동 국가들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국가 경제를 거의 전적으로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이라크는 바스라항이 기능을 상실하며 재정 붕괴 위기에 처했고, 쿠웨이트는 수출할 우회로가 전혀 없으며, 카타르는 천연가스 수출길이 막혔다. 그러자 이들 나라는 한때 추진하려다 서랍 속에만 넣어뒀던 우회로 건설 계획안을 심각하게 다시 꺼냈다. 이번엔 단순 경제 효용을 넘어 국가 생존이란 안보 차원에서 재시동을 걸 분위기다.

선두 주자는 UAE다. 지난 2000년대 중반 금융 위기로 인해 추진을 중단했던 '아라비안 운하' 프로젝트 재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바이 내륙을 관통해 호르무즈 외곽의 푸자이라로 연결되는 총연장 75km의 운하로, 초대형 유조선(VLCC)이 통과할 수 있게 설계하는 걸 검토 중이라고 한다. 완공 시 이란의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오만만(Gulf of Oman) 출구를 확보해 인도양으로 기름을 빼내고 필요한 물자를 유입하는 전략적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동 최대 산유국이자 이란 공격의 최대 피해자인 사우디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이미 동서 송유관 용량을 최대로 늘려 가동 중이고, '살만 운하' 프로젝트를 최우선 국책사업으로 격상시켜 오만의 항구를 종착지로 삼는 국가 간 협상을 재개했다. 950km의 물길을 건설해 인도양을 바로 연결할 관문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사우디와 UAE의 운하 경쟁은 '포스트 호르무즈 시대'의 중동 물류 패권을 누가 거머쥐느냐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는 '속도의 UAE'와 '규모의 사우디'라는 구도로 볼 수 있다. UAE의 아라비안 운하 계획은 살만 운하보다 길이가 훨씬 짧고 영토 안에서 이뤄지는 사업이라서 확정만 되면 완공 속도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는 '중동 물류 허브' 지위를 선점할 수 있다. 다만 오만만도 이란 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다는 건 한계다. 반면 사우디는 아예 이란 영향력 밖의 먼 바다로 나가는 수로 개척이라는 '그랜드 플랜'을 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완공만 되면 규모와 안전성이란 이점을 내세워 물류 중심국 타이틀을 뺏어올 수 있다. 다만 오만 영토를 이용해야 해 협상 문턱이 존재하고, 긴 거리를 뚫어야 하는 만큼 건설비도 천문학적 수준에 달한다. 이라크는 우회 방안으로 수로 대신 육로를 선택했다. 이른바 '드라이 커낼'이다. 바스라에서 튀르키예를 잇는 1천200km의 '개발 도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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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배포 DB 금지]

걸프만의 핵심 수송로이지만 탈 많은 호르무즈의 양면성은 결국 중동 국가들에 제3의 길을 모색하도록 만들고 있다. 페르시아만 인접국들은 더는 이란의 지정학적 인질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요 걸프국들이 인도양으로 바로 나가는 물길을 확보한다면 중동의 권력 지도는 물론 세계 경제 질서도 새롭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첫 삽을 뜨기 시작하면 우리 건설업계에도 '중동 붐'이 재현될 기회가 열린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중동에서 평가가 매우 좋고, 실제로 대형 국책사업과 유명 랜드마크들을 빼어나게 건설해낸 실적도 보유했다. 우리 경제가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고유가와 원유 수급 부족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언제나 위기 속엔 기회가 숨어 있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4월17일 09시22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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