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칭병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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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칭병(稱病)은 질병을 구실로 삼는다는 뜻이다. 구실을 대었으니 목적이 있을 것이다. 통상 칭병사직(稱病辭職), 칭병불출(稱病不出)처럼 뒷말이 붙는다. 전자는 병을 이유로 맡은 직무에서 물러난다는 뜻이고, 후자는 병을 구실로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 역사에도 칭병의 일화가 적지 않다. 군주와 정치적 이견이 있을 때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하거나 정치적 위험이 닥쳤을 때 피하는 방법으로 칭병이 등장한다. 이미지 확대 황희 초상화 (상주=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영정이 8년만에 상주로 돌아온다. 황희 정승이 살아 있을 때 그려진 유일한 초상화 원본이다. 2016.10.21 [경북 상주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조선시대 인종의 충신이던 김인후는 칭병사직과 은거를 택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인종이 재위 여덟 달 만에 요절하고 어린 명종이 즉위한 뒤 외척의 사림 숙청 사건인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몸에 병이 깊다"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명종은 여러 직을 내리며 그를 복귀시키려 했으나 끝내 칭병 상소를 올려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후대에 그는 칭병으로 목숨과 지조를 모두 지킨 사례로 기억된다. 임진왜란 영웅인 의병장 곽재우도 칭병 은거로 정치적 표적이 되는 위기를 피했다. 전란 중 동료 의병장인 김덕령이 정치적 모함을 받아 제거되는 사건에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요 공신이던 그는 선조와 광해군이 전쟁 영웅과 군부를 경계한다는 사실을 알고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을 한사코 사양했다. 상소에 담은 이유는 "병이 깊다"였다. 곽재우는 산속에 들어가 세속과 인연을 끊음으로써 정치적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조선 후기 노론의 거두였던 송시열의 칭병은 왕을 상대로 한 정치적 시위 수단이었다. 왕과 정책 이견이 있거나 반대파 공격이 있을 때마다 "늙고 병들었다"며 사직서를 올리고 낙향했다. 이는 "임금이 내 뜻을 거부하면 정권에 참여 안 하겠다"는 강한 압박이자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주자학 정통 국사(國師)'라는 정치적 위상을 지닌 그의 국정 참여 여부는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됐다. 그래서 송시열의 칭병 정치는 대체로 왕의 뜻을 꺾는 승리로 끝났고, 그때마다 정치적 입지는 강화됐다. 하지만 배수진 정치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숙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결국 사약을 받았다. 세종이 아낀 신하 황희의 칭병사직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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