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벌부가 과연 면죄부를 제칠 수 있을까. 한자로 된 우리말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묻는 까닭을 곧바로 알아챌 것이다. 면죄부는 잘못된 말이므로 면벌부로 바꿔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면벌부는 면죄부만큼 아직 애용되지 않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다. 면죄부가 이상한 말이라는 근거는 간단하다. 면하는 것은 벌이지 죄가 아니란 것이다. 죽을죄를 범한 사람을 죽지 않게 해주는 것은 벌을 면해주는 것이지, 죄를 면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틀림없다. 면하는 것은 죄의 대가인 벌이지 죄 자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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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정말 틀림없나? 면한다는 말을 사람들은 없앤다고 보고 느끼며 쓰는 것 아닐까. 애초에 지은 죄이지만 짓지 않은 양 없애줘 그에 맞추어 받아야 하는 벌도 면하게 해주는 것으로 말이다. 이치가 그렇다면 '면죄부'를 흠잡기 어렵다. '익숙한 말 두고 굳이 대체어를?' 하며 면죄부를 더 쓰는 이유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두 낱말을 모두 "중세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그 죄를 면한다는 뜻으로 발행하던 증서"라고 풀고, 면죄부에 대해서만 "책임이나 죄를 없애 주는 조치나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둘째 뜻을 써놓았다. 면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벌이라는 중세 신학론을 따른다면 잘못된 정의다. 면죄부냐 면벌부냐, 이것은 어쩌면 맥락이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지은 죄까지 없던 것으로 쳐준다는 맥락에서라면 면죄부가 놓여야겠지만, 벌만 받지 않게 한다는 맥락에서라면 면벌부가 놓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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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죄와 벌'에서 서술어 짝짓기 힌트를 찾는 것도 재미다. '죄'는 '짓'는다 한다. 둘 다 지읏(ㅈ)이다. '벌'은 '받'는다 한다. 둘 다 비읍(ㅂ)이다. 다만 죄는 범한다고도 하고, 나아가 죄를 "받는다"고도 쓴다. 사람들은 죄를 벌로도 인식하는 모양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러시아 잡지에 연재된 것이 1866년이다. 160년 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죽인 죄를 짓고 8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죄에 비해 가벼운 벌이다. 러시아어로 분열을 뜻하는 '라스콜'이 이름에 쓰인 라스콜리니코프. 이 분열적 '자아'가 받은 것은 적어도 면죄부는 아니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지은이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옮긴이 홍대화, 『죄와 벌』, 주식회사 열린책들, 2016
2. 벨랴코프 일리야, 『러시아의 문장들』, 틈새책방, 2025
3. 오사와 마사치, 『책의 힘』, 오월의봄, 2016 (성남시 전자도서관, 제공처 YES24)
4. 한겨레신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면죄부보다는 면벌부 (수정 2012-07-04 18:13 등록 2012-07-04 18:13)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0992.html
5.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5월28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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