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소수의견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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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소수의견이 중요한 이유

나는 삼성전자에 재직할 때 영국의 정보통신 총괄 유럽연구소에서 수년간 근무했다. 그만큼 영국은 내게 친숙하다. 영국은 지난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그 결과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찬성률 51.9%로 유럽연합(EU)을 떠났다. 이 선택은 지난 10년간 영국을 어떻게 바꿨을까.

현재까지 나온 공통된 결론은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손실’을 남겼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와 학계가 추산하고 있는 영국 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EU 잔류 기준 대비 4~10% 낮아졌다. 특히 기업 투자 위축과 유럽 내 상호무역에서도 이익 감소가 명확해졌다는 게 영국 내 중론이다. 영국 언론 스카이 뉴스는 ‘영국 국민 중 9%만이 브렉시트가 성공했다고 평가한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민주주의의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영국의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것이다.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은가?’라는 문제는 정치철학과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주제다. 브렉시트에서 보듯, ‘다수의 선택’이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수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다수가 틀린 결정을 내리면, 국가와 사회는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가 틀릴 수도 있고, 다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에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다수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힘을 ‘통제하고 견제할 정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쉽게 왜곡되는 동시에 미래의 그 ‘제도적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로만 운용되는 정치체제가 아니다. ‘견제와 균형’, 그리고 ‘끊임없는 토론과 숙의’ 과정을 통해 유지된다. 다수결은 하나의 결정 방식일 뿐, 절대적인 당위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지금의 대의민주주의가 다수결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권력의 분립, 숙의 과정, 상호 관용, 합리를 위한 협치로 귀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치도 그런 철학에 기반해야 한다. 국회 기능이 ‘다수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한 ‘협치와 타협’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수라도 ‘맞는 말’을 하면 다수는 그걸 관용의 관점에서 존중하는 동시에, ‘역지사지 차원’에서 한 번쯤은 귀를 열고 진지하게 들어볼 아량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치열한 글로벌 각축전의 시대다. 정치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때가 왔다. 여야는 서로 다른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 다른 말을 잘 듣고 이해하려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앞으로는 ‘합리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소수의 의견’도 진정성을 가지고 경청하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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