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두 개의 심장으로 더 든든한 AI 디지털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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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중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이상중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지난해 9월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화재로 정부 전산 시스템 709개의 전원이 모두 차단됐다. 이로 인해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등을 포함한 생활 기반 주요 행정 서비스와 정부 홈페이지 등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피해 규모는 최소 1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지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주요 디지털 자원의 화재 피해로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 국가의 핵심 기능 마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2022년에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전 국민의 92%가 사용하는 카카오톡을 비롯해 카카오쇼핑·카카오페이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일제히 먹통이 됐다. 불과 3년 사이 발생한 두 건의 사고 모두 단일 센터 기반의 중앙집중적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특히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경우 백업시스템(Active-Stand-by)이 존재했음에도, 실시간 양방향 체계(Active-Active)가 완전하지 않았고 자동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예상되는 사고에 대한 사후 대응 방식, 즉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응의 한계를 드러낸다.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의 디지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시대에 맞춰, 어떤 형태의 사고 시에도 서비스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즉, 이제는 장애 이후의 복구가 아니라,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멈추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가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 도메인 '.kr(닷케이알)'은 행정·공공기관, 금융기관, 교육기관, 언론사 등 공공성과 신뢰성이 특히 요구되는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 할 수 있는 .kr 도메인 이름 시스템(DNS)은 매일 60억건에 달하는 질의를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1초당 7만번에 이르는 디지털 대한민국의 초인종이 울려지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자율주행, 헬스케어 등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사회가 고도화되고 K열풍이 거세질수록 .kr-DNS의 수요와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 도메인 운영 안정성이 국민의 일상생활 및 국가 경쟁력과 직결됨을 의미한다.

만약 .kr의 핵심 설비에 화재, 정전, 사이버 공격 등이 발생해 일시적으로 중단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개인 일상에서부터 정부·금융·교육·산업·언론 등 모든 영역에서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디지털 서비스가 사실상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인터넷 주소 자원은 백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해당 백업 시스템이 앞선 국가정보자원관리원과 같이 실시간 동기화 방식에 그친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시스템 복구까지 95일이 소요됐던 것을 고려하면, 인터넷 주소 자원의 관리 수준을 현재와 같이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업수준에 따른 운영 구조백업수준에 따른 운영 구조

지난 30년간 쌓아온 디지털 대한민국의 신뢰는 .kr이라는 국가 DNS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AI 시대에서 국가 DNS는 단 한 순간의 중단조차 용납될 수 없는 핵심 국가 기반 시설이며, 애초에 끊김이 없는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 즉, 한 데이터센터가 장애를 겪더라도 다른 센터가 즉시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시 이원화(Active-Active)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 한 순간도 디지털 대한민국이 멈추지 않도록 '대기(Stand-by)'가 아닌 '동시 운영'이 기본이 돼야 한다.

.kr-DNS 센터-듀얼센터 운영 개념도.kr-DNS 센터-듀얼센터 운영 개념도

독일의 .de(닷디이) DNS 운용 사례는 우리가 참고할 만한 대표적 모델이다. 독일은 독일 내 프랑크푸르트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두 지역에 동등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모든 핵심 서비스를 동일한 수준으로 제공하는 듀얼 모드로 운영하고 있다. 두 센터가 완전히 분리돼 있으면서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문제가 생겨도 서비스는 중단되지 않는다. 이러한 지리적 분산의 완전한 이중화 구조는 국가 도메인 운영의 선도적 사례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국가 DNS 체계는 여전히 단일 센터를 중심으로 운영돼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뒤처질 위험을 안고 있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선제적 정책과 투자가 요구된다.

한편 디지털 환경의 변화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AI 데이터 시장은 2033년까지 연평균 36.5%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역시 국가 AI 인프라 확충과 균형발전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경주 APEC을 계기로 확보된 26만장 규모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이러한 움직임에 더욱 탄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AI 데이터센터가 구축·확대되면서 초고속으로 발생하는 AI 데이터 트래픽을 더욱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현재의 DNS 구조는 사람의 인터넷 접속을 중심으로 설계됐지만, 앞으로는 알고리즘이 보내는 질의가 인간 이용자보다 훨씬 많은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에 최적화된 고성능 .kr DNS 인프라를 추가 구축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AI 데이터 처리 환경을 갖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DNS는 디지털 시대에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찾고자 하는 인터넷 주소로 나를 인도해 주는 '디지털 내비게이터'다. 이 내비게이터가 단 한 번이라도 멈추는 순간,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길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의존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AI 시대에는 그 의존도가 인간 이용자를 넘어 알고리즘까지 확대된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특히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kr-DNS의 상시 이원화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국민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끊김이 없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신뢰를 보장하는 일이자, 국가 디지털 주권을 지키는 핵심 전략이다.

두 개의 심장으로 뛰는 .kr-DNS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디지털 미래의 안정적 맥박이자, 지속 가능한 디지털 발전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상중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원장 entcom@kisa.or.kr

〈필자〉 검찰에서 20년 넘게 사이버 범죄를 수사해온 사이버 보안 분야 전문가다. '검찰 1호 사이버 수사관'으로 통하는 그는 대검찰청 사이버수사실장, 서울중앙지검 인터넷범죄수사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롯데정보통신 상임전문위원과 구미대 사이버보안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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