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이후 한국 증시에 부담이 된 세 가지 악재가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놓고 변수가 남아 있긴 하지만 사모대출 부실 조짐 이후 ‘바퀴벌레 이론’으로 경고했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이 시스템 위기로 전염될 확률은 낮다고 주장했다. 앞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같은 입장을 밝혔다.
대부분의 위기는 유동성, 시스템, 실물 경제 순으로 전이되는 게 전형적인 경로다. 첫 신호인 유동성 부족이 위기로 인식되는 때는 증거금에 문제가 생기는 마진콜이 발생하는 시점부터다. 마진콜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투자 자산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사모대출은 금융위기 재발 방지 차원에서 마련된 도드-프랭크(D-F)법 규제 밖에서 파생된 회색지대 금융이다. D-F법 시행 후 제도권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자기자본, 레버리지 비율 등을 대폭 강화하자 비상장 기업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이 틈을 파고들어 사모대출 펀드가 조성된 만큼 펀드 규모가 커질수록 또 다른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사모대출 부실 우려가 완화되면 인공지능(AI) 위기론도 해소될 확률이 높다. AI와 관련된 각종 위기론은 사모대출 부실로 자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사모대출 부실이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확률이 낮다고 판단되자 AI 주가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집액 대비 투자자금 유입 비율은 100%를 넘어섰다. 자금 부족이 해소됐다는 의미다. 오히려 자체 신용을 통한 자금 조달이 늘면서 질적으로 건전화하고 있다. 대형 은행 주도로 예상 매출, 미래 잠재 가치, 무형 자산 등에 대한 평가 방식이 마련되고 있어 회색지대에 낀 구름도 조만간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대출 부실과 AI 위기론이 해소되면 ‘초크포인트’인 반도체 위상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후공정, 전공정, 소재·부품 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수급 불균형이 심해지는 ‘채찍 효과(bullwhip effect)’ 덕분이다. 경제적 의미로 초크포인트는 호르무즈해협처럼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공급망의 핵심을 말한다.
채찍 효과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요시 셰피 교수가 주장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하루 100개의 제미나이를 생산하고 5일분의 재고를 가져가는 AI 기업이 하루 생산량을 200개로 늘린다면 재고분 1000개를 맞추기 위해 800개를 더 주문해야 한다. 수급 불균형이 증폭되며 반도체 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기업의 재고 정책도 바뀔 수밖에 없다. 반도체와 같은 핵심 소재의 재고 정책은 크게 JIT(Just in Time, 적시 조달을 통한 재고비용 최소화)와 JIC(Just in Case, 여유 재고 확보)로 양분된다. 자유무역과 시장경제가 잘 작동될 때는 JIT가 중시됐다. 최근처럼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전쟁과 같은 디스토피아 환경이 조성되면 JIC가 중시된다. 핵심 소재 조달이 안 되면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초크포인트로 위상이 강해질수록 반도체 기업에선 수요처가 고정되는 록인(lock-in), 매출이 늘수록 영업이익이 커지는 레버리지(leverage), 풍부한 유동성(liquidity) 등 이른바 ‘트리플 L(3L)’ 효과가 나타난다. 내년 말까지로 예상되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연장될 것이란 ‘빅사이클’론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목표가가 잇따라 상향 조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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