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건 십중팔구
대단히 늦기 마련이다,
뱃사람이 보낸 편지가
그가 물에 빠져 죽은 후에야 도착하듯.
손쓸 수 없이 늦은, 그런 편지들과
늦은 시들은 비슷비슷해서
마치 물속을 헤치고 다다르는 듯해.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
전쟁, 눈부신 시절, 욕망에 빠져들었던
달밤, 작별의 입맞춤. 그 무엇이든 시는
해안으로 쓸려온 표류물.
차갑게 식거나 다 먹어치운 낱말들뿐이지.
(중략)
춤을 추기에는 대단히 늦어버렸다.
그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라.
빛을 더 밝혀라. 계속 불러라,
노래를, 영원히.
―마거릿 애트우드(1939∼)
사랑을 노래하는 시는 사랑이 끝난 뒤에 태어난다. 슬픔을 노래하는 시는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서 움튼다. ‘사건’이 꼭대기에서 내려왔을 때, 시인이 시차를 두고 ‘다른 방식의 말하기’를 시도할 수 있을 때에야 시가 태어날 수 있다. “마치 물속을 헤치고 다다르는” 늦된 언어처럼, 시는 뒤늦게 도착한다. 지나가버린 사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뒤늦게 도착하는 시, 마거릿 애트우드는 시의 이러한 숙명을 “해안으로 쓸려온 표류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으면서 그 일을 영원히 박제하고 알린다.
시는 전쟁이 끝난 뒤, 사랑이 끝난 뒤, 누군가의 열렬한 한때가 끝난 뒤, 배고프고 슬픈 시간이 지나간 뒤에야 도착하는 ‘가난한 결정(結晶)’이다. 시가 아름다운 건 사라진 한때를 기억하게 하는 힘, 지난 뒤에야 겨우 알 수 있는 무엇이 있음을 알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계속 부르라고, 시인은 청한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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