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기로 이름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인공지능(AI)의 첨삭 대결은 김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출판사가 마련한 행사다. 사전에 응모한 900자 분량의 에세이 중 3편을 골라 읽은 뒤 미리 준비해 둔 김 교수와 최강의 AI로 꼽히는 앤스로픽 ‘클로드 오퍼스’의 첨삭 내용을 비교해 보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글에서는 누가 첨삭한 것인지 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도 했다. 200명의 참가자 중 85%가 정답을 맞혔다.
▷둘의 첨삭 결과는 많이 겹치지 않았다. AI는 논리적 흐름과 일관성을 강조했다. 늘어지는 대목은 “글의 속도를 늦추는 문장”이고, ‘듯하다’는 표현이 들어간 문장은 “글쓴이가 자신의 논지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삭제를 권했다. AI가 글 안에 갇혀 있는 반면 김 교수는 틀 밖에서 도발했다. ‘떫은감 협회’ 총회 현수막에서 착안한 글을 놓고 “왜, 떫냐?’는 제목을 제안했고, “사적인 감상에서 시작하되 본격적인 사회비평으로까지 도약하는 글이 되면 임팩트가 클 것 같다”며 확장적 사고를 주문했다.
▷행사를 기획한 출판사는 둘의 첨삭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려다 접었다고 한다. 앤스로픽과 사전 양해 없이 대결을 진행한 후 승패를 판정하기가 부담스러웠다는 것. 하지만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수식어 논쟁’이 보여주듯 글쓰기는 승패를 가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헤밍웨이는 수식어 없는 문장을 썼고, 그런 헤밍웨이를 겨냥해 포크너는 “독자가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단어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며 비꼬았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묘사하려면 수식어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수식어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김 교수는 “초고는 무조건 혼자 쓴다. 그리고 (AI) 도움을 받는다. 그게 나의 원칙”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AI에 맡긴다면 “내 능력은 퇴화할 것이고, 그게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생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AI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니, AI 시대에도 글쓰기와 사유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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