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최근 내놓은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이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원칙론을 재확인한 정도에 그쳤다는 평가다. 알짜 자회사를 떼어내 별도로 상장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일반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거래소가 제시한 중복상장 심사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불분명한 규제는 자의적 판단이 개입하는 ‘깜깜이 심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심사 잣대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게 문제로 지적된다. 거래소는 ‘영업·경영의 독립성’과 ‘충분한 주주 소통’ 등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어떤 매출 구조가 ‘독립적’인지, 어느 정도 소통해야 ‘충분한’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수치는 없다. 업계가 요구한 업종별 특성과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적용도 반영되지 않았다. 기준선이 없으니 어느 장단에 맞춰 상장을 준비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심사 일관성을 떨어뜨린다. 비슷한 조건의 기업들이 모호한 판단이나 여론 향배에 따라 상장 예비심사 결과가 엇갈린 사례도 있다. 어떤 회사는 거래소 압박에 상장을 포기한 반면 다른 기업은 순조롭게 심사 문턱을 넘었다. ‘종속회사의 미래 성장성’이나 ‘상장이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 같은 추상적 문구는 거래소가 자의적으로 상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거래소는 수치화된 기준이 오히려 규제 허점만 살짝 피하는 ‘꼼수 상장’을 부추길 수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무원은 명문화된 규정이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은 당국 눈치를 살피는 정무적 대응에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다. 주주 보호라는 명분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자금 조달의 활로를 막는 독소 조항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새 제도 시행 전까지 예측 가능한 수준의 객관적 지표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소액주주 보호와 기업의 성장동력 확보는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잣대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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