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에 3조원 베팅한 미국 "AI로 못 풀 난제 해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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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다음 패권 기술로 양자컴퓨터가 떠오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반도체법(CHIPS법)을 근거로 양자컴퓨팅 기업 9곳에 총 20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IBM은 지난달 28일 향후 5년간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2029년 대규모 오류보정 양자컴퓨터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허니웰 계열 퀀티뉴엄은 4일 나스닥 상장으로 16억달러 넘게 조달했고 아이온큐·리게티컴퓨팅·디웨이브퀀텀 등 관련주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한동안 양자컴퓨터는 ‘대단하지만 상용화는 요원한 기술’로 평가됐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역설적으로 AI였다. 챗GPT 이후 세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신약 후보물질의 분자 구조나 차세대 배터리 소재, 암호체계, 군사용 시뮬레이션처럼 변수 조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문제는 여전히 AI의 한계 너머에 있다. 양자컴퓨터는 바로 이 영역에서 기존 컴퓨터의 벽을 넘어설 차세대 계산 인프라로 꼽힌다.

양자컴에 3조원 베팅한 미국 "AI로 못 풀 난제 해결하겠다"

◇ 슈퍼컴도 버거운 문제 양자가 푼다

기존 컴퓨터가 0 또는 1의 비트로 정보를 다룬다면 양자컴퓨터는 두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를 활용한다. 중첩과 얽힘이라는 양자 현상을 이용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한꺼번에 탐색할 수 있어 특정 문제에서는 슈퍼컴퓨터로도 풀기 힘든 계산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기대되는 분야는 신약 개발과 소재 설계다. 신약 후보물질이나 배터리 소재는 원자와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 기존 컴퓨터는 이를 단순화해 계산해야 했지만 양자컴퓨터는 이런 미세한 움직임을 더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더 정확히 예측하거나, 더 오래가고 안전한 배터리 전해질·양극재 조합을 찾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의 포트폴리오 최적화와 리스크 모델링, 물류·제조의 경로·공정 최적화에도 양자 알고리즘 적용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 양자컴퓨터 기업 IQM의 유하 바르티아이넨 공동창업자 겸 최고글로벌대외협력책임자(CGO)는 “양자컴퓨팅이 실제 산업 현장으로 진입하는 변곡점에 도달했다”며 “올해부터 실질적인 양자우위 사례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가 전략 기술로 분류되는 또 다른 이유는 보안이다. 금융거래와 국가 기밀 통신, 군 통신망은 모두 암호 기술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암호 문제를 더 빠르게 계산할 수 있어, 미래 보안 체계를 뒤흔들 기술로 꼽힌다. 각국 정부가 양자컴퓨터 개발과 함께 양자 시대에도 뚫리지 않는 새 암호 기술 확보에 나서는 배경이다. IBM이 정부 지원금 10억달러에 자체 자금 10억달러를 보태 뉴욕 알바니에 양자 파운드리를 짓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도 양자 기술을 안보 인프라로 보고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국가 암호체계를 양자내성 암호로 전환하는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다. 올해는 통신·금융·교통·국방·우주 등 5개 분야로 양자내성암호 시범전환 사업을 확대했다.

◇ 오류율 보정하는 AI로 상용화 눈앞

맥킨지는 양자컴퓨팅이 203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최대 2조7000억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AI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을 키웠듯 양자컴퓨팅도 칩 제조, 극저온 장비, 제어 전자장비,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보안으로 이어지는 새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상용화의 벽은 남아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오류율이다. 큐비트는 외부 진동과 온도 변화, 전자기 잡음에 민감해 계산 도중 상태가 쉽게 흐트러진다. 양자컴퓨터가 실험실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쓰이려면 계산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를 실시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초전도 방식의 경우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과 복잡한 제어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최근에는 AI가 이런 한계를 낮추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상태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큐비트가 흔들리지 않도록 장비를 자동 조정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박사급 물리학자가 장비 옆에서 직접 보정해야 했던 작업을 AI가 대신하면서 운영 난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가 지난 4월 공개한 양자컴퓨팅용 AI 모델 ‘이징(Ising)’이 대표적이다. 이징은 양자처리장치(QPU)가 내놓은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큐비트의 불안정성을 보정하고 오류 데이터를 AI가 다시 수정한다. 바르티아이넨 창업자는 “예전엔 박사급 물리학자가 장비에 붙어 있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장비 상태를 분석해 자동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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