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헌 제9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대담=윤대원 전자신문 부국장
“기초예술 데이터가 곧 국가 문화 경쟁력입니다. 이제 문화예술도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 위원장은 전자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르코가 추구하는 미래 방향을 이같이 설명했다. 단순한 순수예술 지원기관을 넘어 AI·데이터·아카이브·다원예술·지역 문화 전략까지 연결하는 '미래형 문화 플랫폼'으로의 역할 전환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AI 시대를 맞아 문화예술 분야 역시 기존 장르 중심 체계를 넘어 새로운 융복합 구조로 재편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정부가 AI를 핵심 국가 전략으로 강조하고 있다. 아르코는 이 분야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적지 않은 곳에서 아르코가 AI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 실제로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미 아르코 내부에서는 정보화 작업과 온라인 플랫폼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다. 단순히 행정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수준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AI 플랫폼 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장기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AI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강조하는 만큼 문화예술 역시 그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문화예술 분야 AI는 단순 기술 적용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 기반과 콘텐츠, 데이터 축적이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정보화 작업과 동시에 AI 시대를 대비한 구조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정보화 작업 진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대표적인 것이 아카이빙과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이다. 현재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건물 일부 공간에는 아르코 예술기록원(옛 국립예술자료원)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근현대 예술가들에 대한 구술채록, 원시 자료 수집, 예술사 기록 작업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특히 원로 예술인들 증언과 자료를 확보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자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순 기록 보관이 아니라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공개 시스템까지 연결하고 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연구자들은 논문 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일반 국민들도 문화예술 콘텐츠를 향유하거나 학습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결국 AI도 데이터가 핵심이다. AI 기술이 발전해도 원천 데이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결국 문화예술 원천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사실 순수예술 분야는 중요성에 비해 체계적 데이터 관리가 다소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AI 시대에는 이런 자료 자체가 국가 문화 경쟁력이 된다. 예를 들어 미술사, 음악사, 무용사, 공연예술 기록, 평론 자료, 창작 과정 기록 등이 모두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데이터가 없으면 정보화는 물론 AI 접목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아르코는 기관이 아니라 이런 기초 자산을 축적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AI 시대에는 예술 장르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이미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는 음악, 미술, 무용, 문학, 연극 같은 전통 장르 중심으로 문화예술 체계가 구성돼 있었다. 지금은 이런 구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아트, 디지털아트, 온라인 기반 창작, 인터랙티브 콘텐츠, AI 기반 예술 작업 같은 분야는 기존 장르 개념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르코 내부에서도 다원예술 분야를 연구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다원예술은 단순 장르를 섞는 수준이 아니다. 기술·과학·미디어·온라인 플랫폼·AI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앞으로는 이런 융복합 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AI 예술 역시 결국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해외에서는 AI가 제작한 미술 작품이 경매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도 AI 작곡, AI 작사, AI 가상 가수 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예술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기준과 제도를 만들 것인가가 문제다. 거대한 시대 흐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문화예술계가 선제적으로 방향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한국 문화예술이 AI 시대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범헌 제9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AI와 예술의 접목에서 저작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복잡한 문제다. 다만 현재 기준에서 보면 AI 자체를 독립적인 저작권 주체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AI는 결국 도구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는 인간 창작자의 의도와 설계다. 어떤 질문을 입력하고 어떤 방향으로 결과물을 유도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AI가 그림을 그렸다 하더라도 그것은 입력값과 지시 체계에 의해 생성된 결과물이다. 결국 창작 방향을 설계하고 결과를 선택하는 인간이 핵심 주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관점에서는 AI 자체보다는 AI를 활용하는 인간 창작자가 저작권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본다.
AI 기술이 더 발전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미 AI 캐릭터가 노래를 부르고 작사·작곡을 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앞으로 더 발전하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다고 본다. 결국 AI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발전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법률과 제도, 윤리 기준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점이다. 앞으로 공론화와 연구가 더 필요한 분야다.
-기초예술 분야와 대중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초예술은 산업 논리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대중문화처럼 즉각적인 시장 반응과 수익 구조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 지원이 중요하다. 기초예술은 문화 분야의 연구개발(R&D)이라고 본다. 기초과학이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국가 미래 경쟁력을 위해 투자하듯, 기초예술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제는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만 유지해서는 미래 비전을 만들기 어렵다. 기초예술 역시 새로운 기술과 융합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나주본관.-아르코 지방 이전 이후 성과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하려는 구상도 있다고 들었다.
△현재 아르코 본부가 위치한 전남 광주권(본사 나주)을 글로벌 문화 수도로 육성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논의와 연결하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아르코가 중심 역할을 하면서 지역 문화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려 한다. 전남·광주권은 문화 잠재력이 굉장히 크다. 아시아문화전당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인프라가 이미 존재한다. 전통문화 자산도 풍부하다.
문제는 이런 자산들이 잘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별 사업은 많은데 전체를 묶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전남 전역을 문화 콘텐츠 권역으로 연결하고 이를 글로벌 문화 수도 전략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기관 차원의 조직 개편 필요성도 있나.
△우리 위원회는 대한민국 문화예술 전반을 총괄하는 대표 전문 기관이다. 그 역할과 책임에 걸맞게 본연의 지원에 충실하면서도 정책 체재도 보완할 수 있도록 역할기능과 실행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K-문화강국으로서 부처와 긴밀히 협력하며, 국가 문화예술의 미래를 견인하는 중심축으로서 발전적인 체계 개편을 모색해 나가겠다.
-청년 예술인을 위한 지원방안이 있나.
△청년 예술인 육성은 본원의 핵심 사항이다. 이를 위해 기존 유사·중복의 공모 방식을 탈피한 청년층 특화 '적극 발굴형 지원' 및 '인프라 연계형 간접 지원'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기존 지자체·타 부처의 청년 지원은 소액 공모 방식에 편중됐다. 또 행정 진입 장벽으로 인해 정작 지원이 절실한 사각지대의 청년 아티스트를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발생했다. 기관 간 유사·중복 문제도 있다.
앞으로는 기관 전체의 공모 틀을 흔드는 리스크는 지양하되, 청년 사업에 한해서는 사각지대 인재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아르코의 독보적인 자산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간접 지원을 통해 청년 예술가 자생력을 실질적으로 견인할 계획이다. 기획·행정 인턴십 위주의 일자리 지원사업을 '청년예술창작자 중심'으로 개편, 창작자가 경제적 안정을 기반으로 예술적 성과를 내며 현장에 안착하도록 실무와 창작을 매개하는 구조로 바꿀 계획이다.
현장 진입 전 단계인 대학(원)생들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예술대학 연계 지원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학교 교육과 현장 실무의 간극을 메우고 초기 포트폴리오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 문화예술의 글로벌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 문화예술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진 만큼, 기존 아웃바운드 중심에서 인바운드 확산까지 쌍방향으로 교류 방식을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
K-컬처의 세계적 확산으로 한국예술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국제교류는 우리 예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진출시키는 아웃바운드 중심의 일회성·일방향 방식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이제는 전 세계 예술가·전문가가 한국으로 모이고 함께 창작하는 쌍방향 소통의 구조로 통로를 넓혀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세계 예술이 한국에서 모여 교류하고 다시 세계로 발신되는 글로벌 플랫폼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 K컬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확산되고 있지만 이 흐름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속 가능한 문화강국이 되려면 다음 단계 전략이 필요하다. 그 핵심 중 하나가 AI와 문화예술 융합이다.
위원회 역시 단순 지원기관을 넘어 미래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문화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프로필〉
이범헌 위원장은 1963년생으로 선화예고를 졸업한 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한국예술종학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수학했고, 홍익대 동양화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다수 특선을 받았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2017~2020),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2020~2024) 등을 역임했다.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전시감독, 문화체육관광부 미술주간 자문위원, 서울시교육청 문화예술특보, 예술의전당 자문위원, 신한대 특임교수 등 문화예술계 현장과 정책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지난 4월 27일 제9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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