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이것 좀 보세요. 말도 안 돼요 진짜!”
연구원 동료가 긴 논문 한 편을 넣고 구글에서 제공하는 인공지능(AI) 툴인 노트북LM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한 뒤 10여 분 만에 끝내주는 발표자료를 얻어냈다. 깔끔한 구성과 전개, 그럴싸한 제목과 픽토그램까지. 사람이 직접 만들었으면 거의 하루가 걸릴 뻔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300페이지짜리 책의 PDF 파일을 넣고 영상 제작을 AI에 의뢰했다. 한국어로 성우가 말하듯 내용을 설명해 주는, 내용에 딱 들어맞는 이미지와 문장이 포함된, 마치 전문가가 만든 듯한 동영상이 20여 분 만에 탄생했다.
자고 나면 판도 뒤흔들려
탄성을 내지르던 동료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한 마디씩 던졌다. “우리, 이제 뭐 해 먹고 살죠?”
미국 AI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AI의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구글 AI가 승자인 듯하다. SNS와 커뮤니티에 AI의 성능을 찬양하는 ‘간증’이 끝없이 올라온다. 간증 글에는 어김없이 “구글 이외의 다른 신은 없으며 제미나이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주문 같은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몇 달 뒤, 아니 몇 주 뒤에 다른 AI가 업데이트되고 나면 지금의 상황은 뒤바뀔 수도 있다.
중요한 건 AI 성능이 좋아질수록 사무직이든, 연구직이든 그동안 익혀온 스킬들의 효용, 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동료들이 AI의 놀라운 발전과 그 결과물을 보다가 일순간 침묵한 건 바로 그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직 허점이 많고, 틀린 내용도 나오며, 영상과 프레젠테이션 속 한글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때론 영상이나 발표자료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 원문의 저자가 의도한 것과 달리 해석해 내용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도 금방 해결될 것이다.
인간 역할은 '내 생각 담기'
그렇다면 이제 인간이 가진 경쟁력은 무엇일까. 짧은 토론을 거친 뒤 동료들은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AI가 영상을 만들고 발표자료를 알아서 만들어 주는 시대가 온다면 그 바탕이 되는 내용을 만드는 사람의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 텍스트 자체, 콘텐츠 자체를 생산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AI들이 AI가 만든 콘텐츠를 학습하면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떨어지는 ‘AI 열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신선하고 좋은 내용을 담은 원조 콘텐츠, 특히 텍스트 문서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첨단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는 법, 경쟁력을 유지하는 법은 역설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 작성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당신이 이끄는 조직에는 앞으로 점점 현란한 파워포인트 작성 기술과 영상 편집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사유와 통찰이 있는, 그걸 글로 담아내 오리지널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해질 것이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5 days ago
3
![[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내가 가장 먼저 안 '첫눈'](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