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안 합니까. 인격을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기 전 우원식 국회의장이 꺼낸 말이다. 첫 주자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 없이 입장하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는 “국회의장에게 인사하는 것은 국민에게 인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며 나 의원과 기싸움을 벌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안건인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무관한 발언을 한다는 이유로 마이크를 끄고 정회를 선포했다.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중단시킨 건 1964년 이후 61년 만이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우 의장의 주장을 반박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과거 필리버스터에서 민주당 계열 의원들의 주제에 맞지 않는 토론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이학영 의원은 시를 낭송했고, 최민희 의원은 소설책을 낭독했으며, 강기정 현 광주시장은 노래를 했다”고 꼬집었다.
야당은 그동안 우 의장의 편향적인 국회 운영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그는 지난해 6월 상임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당시 다수당이자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지난해 7월에는 국민의힘 항의에도 불구하고 순직해병 특검법을 본회의에 상정시켰다. 대정부 질문 기간에 쟁점 법안을 상정시키지 않는 국회 관례를 깬 것이다. 그때마다 내세운 단어는 ‘국민’이었다. 그는 올해 초 자신의 SNS에 “국민의 편이 되는 것이 국회의장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고 그래서 중립은 몰가치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중립 의무를 방기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게를 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우 의장이 정작 국민의 ‘반쪽’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필리버스터는 소수 야당의 유일한 저항 수단인 만큼 안건과 다른 내용을 발언하더라도 용인하는 게 관례였다”며 “민주당 지지자들에겐 우 의장 행동이 ‘사이다’겠지만, 모범적인 의장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끝까지 중립을 지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93년엔 오히려 김 대통령이 적극 추진했던 통합선거법의 일방적 처리를 거부했다. 이 전 의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나는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 한 번은 방청석을 통해 국민을 바라보면서 ‘양심의 의사봉’을 친다”고 했다. 전날 국회의장석에서 자신을 “저는 아주 의회주의자”라고 소개한 우 의장은 의사봉을 칠 때마다 어디를 바라봤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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