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공지능(AI) 관련 논의는 컴퓨팅 기술, 알고리즘 개발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AI는 자연과학 혹은 공학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데이터의 품질과 도메인 지식의 중요성이 부각되더라도 인문·사회 분야는 기술을 단순히 ‘활용’하는 주변 영역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폭넓게, 또 정교하게 수집·가공·학습시키느냐는 AI의 지능 수준과 신뢰성을 결정하는 핵심 기반이다. 이런 점에서 데이터를 해석하고 맥락을 부여하는 인문·사회 분야는 AI의 성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주체 중 하나다.
AI 시대의 핵심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데이터를 어떤 관점과 사고의 틀로 읽어낼 것인가를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 이는 단일한 정답이 아니라 다층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고유 역량이다. 더구나 AI 기술의 폭발적 발전은 윤리, 제도, 정책은 물론 인간관계, 문화까지 사회 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런 변화로 AI 생태계에서의 인문·사회 분야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모두를 위한 AI 인재 양성’ 방안은 중요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초·중등에서 평생·직업교육까지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AI 교육을 촘촘히 설계해 국민 누구나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고등교육 단계에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중점에 두면서도 인문·사회 중심의 융합 인재 양성으로 시야를 확장한 조치는 시의적절하다.
더불어 인문·사회 분야가 AI 환경에서 단순한 관찰자나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AI 기술의 고도화를 이끄는 추진자이자 AI 생태계를 설계하는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더욱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 확대가 필요하다. 이는 각 대학이 전교생 대상 코딩 과목을 개설하거나 단순히 AI라는 이름을 붙인 교과목 몇 개를 마련하는 일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정부의 AI 인재 양성 정책과 대학의 인문·사회 융합 교육을 본격적으로 연계하는 체계적인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문·사회 분야 역시 미래 사회의 능동적 역할을 위해 기존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자기 변화가 요구된다. 동시에 정부는 AI 생태계에서 인문·사회 분야의 전략적 중요성을 직시하고, 인문·사회 기반의 AI 융합 연구와 교육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AI 시대의 인문·사회는 기술의 단순한 사용자에 머물 것이 아니라 AI가 무엇을 학습하고 어떤 사회적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정책적 중심축이 돼야 한다.
하드웨어와 컴퓨팅 기술, 알고리즘 개발뿐 아니라 인류가 축적해 온 방대한 인문·사회학적 자산을 정제된 데이터로 구축하려는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소버린 AI’ 시대에 걸맞은 AI 생태계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2 weeks ago
6
![[한경에세이] 플랫폼과 은퇴자의 아름다운 동행](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