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을 준비하며 제출한 증권신고서(SI)에는 인상적인 사업 계획이 담겨 있었다. “워킹맘인 수지는 퇴근 후 아이의 준비물과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시리얼, 우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곧바로 앱으로 장을 본다. 다음 날 아침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집 앞에 준비물과 아침 식사가 도착해 있다.” 김 의장은 소비자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며 감탄할 만한 이런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비현실적이고 생소해 보였던 이 서비스는 2025년 현재 많은 이들의 당연한 일상이 됐다. 출근길 아침을 준비하는 직장인,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카페 사장, 제철 농산물을 신선하게 배달하고자 하는 농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쿠팡은 10조원 가까이 이르는 막대한 물류 투자와 정교한 시스템 설계를 통해 서비스를 구현했다. ‘새벽배송’ 서비스다.
모두 반대하는 또 다른 규제
이렇게 탄생한 새벽배송 서비스가 최근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택배 사회적대화기구’ 회의에서 택배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밤 12시~오전 5시 사이 초심야 배송을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정치권과 노동계, 산업계에서 새벽배송 규제 논쟁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민주노총 이외에 이 법안에 찬성하는 이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5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새벽배송 금지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새벽배송 중단은 맞벌이 가정의 일상에 큰 타격”이라며 “마트의 문이 닫힌 밤, 아이들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방법”이라고 썼다.
청원을 올린 이를 포함해 쿠팡, 컬리 등 e커머스의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2000만 명에 이른다. 새벽배송을 통해 물건을 파는 농부와 소상공인,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새벽배송은 삶의 터전이자 기반이다. 새벽배송이 없어지면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
혁신 발목 잡는 민주노총
심지어 민주노총이 보호하겠다고 나선 배달기사조차 반발하고 있다. 배달기사들은 교통 혼잡, 수입 증대 등을 이유로 새벽배송을 오히려 선호한다. 쿠팡의 직고용 배송기사 노조인 ‘쿠팡친구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의 입법 추진을 “민주노총 탈퇴 사업장에 대한 보복”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기업(경영)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영의 본질은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니라 고객 중심의 혁신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새벽배송은 이런 드러커의 경영 철학을 구현한 대표적 예다. 혁신의 산물이자 수많은 일자리가 연계돼 있는 국민 생활의 필수 인프라다. 새벽배송 금지는 혁신을 되돌리고, 2000만 명 소비자의 편익을 해치며, 수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누구를 위해 새벽배송을 막고자 하는지, 지나친 집단 이익과 정치적 목적에 매몰돼 있지 않은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3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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