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28일은 미국 원자력 역사에서 재앙의 날이다.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아일랜드의 원전 2호기에서 노심 용융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공포는 극에 달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임산부, 아동에게 반경 5마일(약 8㎞) 밖으로 피할 것을 권고했는데, ‘원자로가 폭발한다’는 소문에 14만 명 이상이 짐을 싸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약 10년간 미국에선 원전 인허가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미 언론은 최근 스리마일 원전 1호기가 재가동 준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2호기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된 1호기는 1985년 재가동됐다가 2019년 비용 문제로 또 멈췄다. 그런데 인공지능(AI) 붐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소유주인 콘스텔레이션에너지가 재가동에 나선 것이다.
AI의 꿈, 핵 재앙도 잊었다
생산된 전기는 이르면 2027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센터에 20년간 공급된다. 미시간주의 팰리세이즈 원전(1971년 상업운전 시작, 2022년 중단)이 곧 가동을 재개하며, 아이오와주 두에인아널드 원전(1975년 상업운전 시작, 2020년 중단)도 2029년 재가동이 추진되고 있다. 미 에너지부(DOE)는 이들 프로젝트에 최대 12억달러를 대출해주는 등 전폭 지원하고 있다. 기존 원전 자산을 재활용해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왜 ‘설계 수명’을 다한 원전의 재가동을 허용할까. 설계 수명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수명(safety life)을 뜻하는 게 아니어서다. 원전은 설계 수명을 넘어 고방사선, 고열, 압력을 견디도록 매우 큰 안전 마진(safety margin)을 적용해 짓는다. 설계 수명은 투자 회수 등 경제적 요인에 따라 정해진 측면이 강하다. 1960~1970년대 전력회사의 감가상각 기간이 40년이었다는 얘기다. 새 원전을 짓는 데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완공된 조지아주 보글 원전은 공사 기간 11년, 300억달러 이상 비용이 들어갔다. 그래서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은 설비의 열화, 금속 피로 등을 점검해 원전 수명을 20년 단위로 연장한다. 미국에선 원전 대부분이 1차 연장을 승인받아 60년간 운영한다.
미국 80년 쓰는데 한국은 해체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의 악몽을 겪은 일본도 비슷하다. 도쿄전력은 최근 모든 절차를 완료하고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의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고를 낸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원전 중 첫 재가동 사례다.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사고 이전에 가까운 약 2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신규 원전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최근 고리 원전 1호기의 해체가 시작됐다.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는 2017년 영구 정지됐다. 경주 월성 등 원전 다수가 설계 수명 만료를 앞두고 있어 해체는 늘어날 전망이다. 고리 원전 2호기는 논란 끝에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2032년까지 계속 운전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허가는 10년에 그치며, 고리 1호기도 한 차례 10년 수명이 연장된 뒤 해체 결정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전력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새로 지어질 AI 데이터센터 전력을 감당하려면 원전 53기를 추가 건설해야 할 정도다. AI 강국을 외치면서도 그 기반인 ‘전력 인프라’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미래 발목을 잡는 실책이 될 수 있다.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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