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편의성-걸음 수 관계 분석하니, 걷기 좋은 도시서 걸음 수 증가 뚜렷
시골보다 도시 거주자들이 더 걸어… 도시가 자연스레 생활 속 걷기 유도
보행 친화 도시, 시민 신체활동 늘려… 도시계획의 보건정책 측면 고려해야

최근 학회 참석을 위해 일주일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세종시에 거주하며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일상인 내게 그 일주일은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과 버스를 주로 이용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다리에 기분 좋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스마트폰 앱을 확인해 보니 세종에 있을 때보다 하루 평균 걸음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 있었다.》
특히 보행 편의성과 이사 후 하루 평균 걸음 수의 변화는 뚜렷한 우상향 선형 관계를 나타냈다. 즉, 보행 편의성이 더 좋은 도시로 이사할수록 걸음 수는 비례해 증가하고, 반대로 보행 편의성이 나쁜 도시로 이사하면 걸음 수는 그만큼 감소했다. 보행 편의성이 유사한 도시로 이사했을 때 신체활동량에는 변화가 없었다. 활동적인 사람이 걷기 좋은 도시를 찾아가는 ‘선택 효과’보다 환경 자체가 사람을 걷게 만드는 ‘인과 효과’가 훨씬 강력한 것이다.
연구진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국 내 모든 도시의 보행 편의성을 뉴욕시 수준으로 높인다면 미국인 4700만 명이 추가로 신체활동 권장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렇다면 걷기 좋은 도시 혹은 대도시에서의 신체활동 증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걷기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내가 서울에서 경험한 걸음 수 증가의 대부분은 여가를 위한 산책보다는 지하철역을 오가거나 환승을 위한 ‘이동’ 그 자체였다.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이러한 필자의 경험을 데이터로 뒷받침한다. 연구팀은 2015년 미국 국민건강면접조사(NHIS)에 참여한 성인 3만736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시(Urban)와 시골(Rural) 거주민의 걷기 패턴을 ‘여가’와 ‘교통’ 목적으로 나눠 정밀 분석했다.
이는 도시의 밀집된 환경과 대중교통 인프라가 거주민들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걷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시골 지역은 낮은 인구밀도와 부족한 대중교통으로 인해 자가용 의존도가 높아 생활 속 신체활동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두 연구는 도시에서의 삶이 개인의 신체활동을 자연스럽게 증가시키며, 특히 보행 편의성이 높은 도시 환경은 걷기를 유도하는 강력한 공중보건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규칙적인 걷기가 심혈관 질환, 당뇨, 비만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도시계획은 단순히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짓는 건설·토목 정책일 뿐만 아니라, 시민의 기대수명과 건강을 결정짓는 보건 정책의 일환으로도 다뤄져야 한다.
물론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원치 않는 걷기를 강요받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신체활동 부족이 전 세계적인 사망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현대사회에서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도시 환경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의 국토 개발과 도시재생 정책은 기능적 효율성을 넘어 시민들이 걷고 싶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걷게 만드는 ‘보행 친화성’을 주요 가치로 삼아야 한다. 또 서울 및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의 중소도시도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도시가 아니라 걷는 즐거움과 건강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연구① Althoff, Tim, et al. “Countrywide natural experiment links built environment to physical activity.” Nature(2025): 1-7.
연구② Carlson, Susan A., et al. “Geographic and urban-rural differences in walking for leisure and transportation.” 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55.6(2018): 887-895.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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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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