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어제 각의를 열고 21조3000억엔(약 200조원) 규모의 경제대책을 확정했다. 민생·고물가 대응, ‘강한 경제’ 실현을 위한 성장 투자, 방위력 강화에 재정을 투입한다. 민생에 11조7000억엔, 반도체·인공지능(AI)·조선산업 등 성장 투자에 7조2000억엔을 배정했다. 이를 위해 17조7000억엔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방침인데 지난해보다 4조엔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무제한으로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살리겠다던 ‘아베노믹스’ 계승자답게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 한 달 만에 대규모 돈 풀기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재정 악화 우려다. 경제대책 논의가 시작된 이후 일본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40년 만기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10년 만기가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환율 역시 경제대책 윤곽이 드러난 그제 엔·달러 환율이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157엔을 뚫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이 200%대로 세계 최악인 일본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규모 추경이 당연한 것처럼 일상화됐다. 더구나 일본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로 뛰어올랐다. 무분별한 돈 풀기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엔저 역시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물가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추경이 오히려 민생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는 셈이다. 국채 금리 상승 역시 주택대출 금리 등을 끌어올려 소비자의 부담을 늘린다. 성장 투자가 결실을 보지 못한다면 경제 침체는 그대로인 채 빚만 늘리는 결과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은 아니다. 당장 엔화 약세는 달러 강세를 불러 가뜩이나 치솟은 원·달러 환율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일본 국채 금리 급등 역시 우리 국채 금리를 자극할 수 있다. 확장 재정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한·일 정부는 닮은꼴이다. 이재명 정부도 출범 직후 30조원(세입 경정 포함)의 ‘슈퍼 추경’을 내놨고 내년 예산 역시 8% 늘어난 728조원의 ‘슈퍼 예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기축통화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나라인데도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재정 중독’만큼은 일본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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