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술 스타트업이라도 주 52시간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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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0.21 17:30 수정2025.10.21 17:30 지면A35

벤처기업 직원 중 70% 이상이 ‘충분한 보상이 제공된다면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벤처기업협회가 스타트업 재직자 214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의 내용이다. 초과 근무 의향이 ‘전혀 없다’는 응답은 7.7%에 그쳤다. 근로자 대다수가 주 52시간 이상 근무를 꺼린다는 통념과 사뭇 다른 결과다.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근무 여건이 다르다. 일이 몰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편차가 상당하다. 단시간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프로젝트형 업무가 많다 보니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직원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고 보긴 힘들다. 성과가 나면 고연봉과 승진, 스톡옵션 등을 받을 수 있어서다. 자유로운 기업 문화와 화끈한 보상 때문에 대기업 대신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인재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위기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창업기업은 57만440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 줄었다. 창업기업 통계를 처음 낸 2016년 이후 최저치다. 성장 잠재력이 큰 기술 기반 창업도 감소세다. 상반기 기술 창업기업은 10만8096개로 전년 동기 대비 3.1% 줄었다.

기술 창업이 위축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벤처캐피털이 인공지능(AI) 등 기술력이 검증된 중견 스타트업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신생 스타트업의 외부 투자 유치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 드론, 자율주행 등 신산업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운 것도 기술 창업의 걸림돌로 꼽힌다. 여기에 주 52시간제 같은 노동 규제까지 더해졌다. 해외 경쟁사는 ‘996(9시 출근, 9시 퇴근, 6일 근무)’을 불사하는 상황에서 칼퇴근으로 맞설 수 있겠느냐가 벤처업계의 항변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더 나은 보상을 위해 초과 근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까지 주 52시간제를 강요하는 건 지나치다. 기술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만이라도 주 52시간제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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