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조 때부터 존속, 일제 침탈에 광장주식회사로 저항
전국최대의 혼수시장, 짐꾼 허기 달래는 '특식' 생겨나
외국인 상대 바가지 극성, '민족상인의 혼' 되새겼으면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서울 종로 4·5가 일대 배오개(배나무 고개·이현)는 조선 영·정조 시대부터 종루(종로 1~3가), 칠패(서울역~남대문 사이)와 함께 도성 상권을 떠받치는 거대한 장터였다. 이 자리에 1905년 근대적 시장 하나가 태어났다. 지금의 광장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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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장의 탄생은 일제의 경제 침탈에서 비롯됐다. 1904년 일본은 제1차 한일협약을 통해 탁지부(재무부)에 메가타 다네타로를 재정 고문으로 파견했다. 메가타는 대한제국의 화폐인 백동화를 일본은행 화폐로 바꾸는 화폐정리사업을 전격 실시했다. 교환 기간이 촉박한 데다 조선인 자본가가 보유한 백동화 상당수가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민족 자본은 일순에 무너져 내렸다.
종로 상인들은 이 폐허 위에서 자구책을 마련했다. 십시일반 자본금을 출자해 '광장주식회사'를 세우고 조선인 손으로 만든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 문을 열었다. 두산그룹의 뿌리인 포목상 박승직도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광장시장의 이름은 청계천 다리에서 가져왔다. 청계천 종로1가의 광교(廣橋)와 2가의 장교(長橋), 두 다리 이름의 첫 글자를 따 광장(廣長)이라 했다. 원래는 두 다리 사이 하천을 복개해 시장을 열 계획이었으나, 당시 건설 기술로는 청계천 범람을 감당할 수 없어 배오개로 터를 옮기면서 廣藏(광장)시장으로 바뀌었다. '널리 모아 간직한다'는 뜻으로 흔히 떠올리는 넓은 공간, 광장(廣場)과는 무관하다.
광장시장은 6·25 동란으로 잿더미가 됐으나 1953년 휴전과 함께 재건위원회가 꾸려졌고, 1956년 3층짜리 광장주식회사 건물이 다시 섰다. 한복·이불·폐백 등 혼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전국 최대의 혼수 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시장 2층에 한복 매장이 밀집해 있는 연유다.
전국에서 올라온 채소·잡곡·과일·생선·젓갈이 거래됐고, 전쟁 후 구호물자가 동대문을 통해 이곳으로 유입되면서 구제(중고·재고) 의류점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전국 각지에서 짐꾼이 몰리다 보니 이들의 허기를 달래는 독특한 길거리 음식도 생겨났다.
맷돌로 갈아낸 녹두를 펄펄 끓는 기름 판에 넣어 바로 부쳐내는 빈대떡, 김에 단출한 재료를 넣어 겨자 소스에 찍어 먹는 꼬마 김밥, 잘게 썰어낸 소 우둔살을 설탕과 고소한 참기름으로 버무린 육회가 그것이다. 간식으로는 달콤하고 쫀득한 찹쌀 꽈배기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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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제공 >>
민족 상인들의 혼이 깃든 시장이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을 등치는 곳으로 손가락질받고 있다. 최근 한 노점상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에게 온라인 도매가의 약 10배에 달하는 2천원에 생수를 파는 영상이 공개되며 바가지 상혼의 명소로 악명을 더하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정과 넉넉한 인심을 기대하며 찾아온 외국인들을 호구로 보는 이들의 행태가 어처구니없다. 120년 전 민족 자본을 지키려던 뜨거운 창업 정신과, 눈앞의 이익에 눈먼 채 체통과 자존심을 내팽개친 오늘의 현실 사이 간극이 너무도 넓다. 광장시장이 이름처럼 '널리 모아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묻게 된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4월20일 11시21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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