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6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민생지원금으로 편성돼 ‘소득 하위 70% 대상 10만~60만원 차등 지급’이 추진된다.
정부는 이번 추경의 배경으로 이란전쟁에 따른 위기 대응과 신속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편성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쟁 피해 복구 또는 직접적인 대응에 집중됐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전쟁이 장기화하면 추가 재정 투입이 반복될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이번 추경 편성은 ‘나눠먹기 속도’만 부각되고 문제의 핵심인 ‘어떻게 나누느냐’의 고민이 너무 부족하다. ‘현금 지급의 상시화’를 위해 차등 지원이 결정됐다면 이에 대한 효율성이라도 제대로 작동해야 했다.
민생지원금의 차등 지급을 위해 이미 구태가 된 건강보험료 징수 기준에 의존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정책 설계의 정교함은 사실상 제자리에 멈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보험료 징수 기준은 행정적으로 편리한 지표일 뿐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근로소득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 탓에 자산과 금융소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보험료가 낮은 계층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고, 반대로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은 배제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수차례 확인돼 개선이 요구된 문제다. 그때마다 정부는 ‘신속성’을 이유로 제시하고 앞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껏 비슷한 방식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정치권의 무기력한 태도다. 지난 수년간 지금의 여당을 중심으로 이 같은 현금 지급 정책이 반복돼 왔다. 이 과정에서 지급 기준의 한계와 오류 사례는 충분히 축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에서도 또 같은 기준이 적용된 것은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명백한 정책적 무능이다. 데이터를 결합하고 기준을 정교화할 시간과 경험은 충분했다. 하고자 했으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이다.
개선 방향은 명확하게 나와 있다. 첫째, 소득 중심 기준에서 벗어나 자산을 포함한 통합 평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국세청 금융소득 자료, 부동산 공시가격, 임대소득 정보 등을 결합하면 실질적인 ‘지급 능력’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현재 국세청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둘째, 단일 기준이 아니라 다층 기준을 채택해야 한다. 일정 구간에서는 자동으로 지급하되, 경계선에 있는 계층은 추가 심사를 거쳐 형평성을 보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사전 선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후 정산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우선 폭넓게 지급하고 고소득·고자산 계층은 이후 세금으로 환수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러 국가에서 검증된 모델로 우리나라도 적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재정은 속도뿐만 아니라 정밀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기준 없는 속도’는 단기적인 체감 효과를 만들 순 있어도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인공지능(AI)이 경제를 바꾸는 시대에 재정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이번 추경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선별 지급하려면 더 공감받을 수 있는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어설픈 기준의 재정 집행은 정부 불신만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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