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의대 증원 추진 과정’ 감사 보고서는 ‘5분 국무회의’ 같은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일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의대 2000명 증원이 결정됐다’는 감사 보고서의 결론보다 행간에 담긴 상식을 벗어난 국정 운영에 놀라고 말았다. 윤 전 대통령은 한 번도 2000명이라는 숫자를 콕 찍어 지시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실 참모, 정부 관료가 거친 성정의 대통령을 거스를까 마치 ‘스무고개’를 풀 듯이 집단 지성을 발휘한 결과였다.
“충분히 증원” 대통령 지시 맞히기
의대 증원 방안의 첫 보고는 2023년 6월이었다. 2025년부터 매년 500명씩 늘리는 방안이었다. 이에 대해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증원에 관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여 보는 차원에서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연 400명 증원을 참고해 제시한 숫자”라고 진술했다. 처음부터 과학적 추계나 의료계와의 합의는 제쳐두고 대통령의 뜻을 알아보려는 ‘간 보기 숫자’를 내밀었단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것 가지고 문제 해결이 되겠나. 1000명 이상은 늘려야 하지 않겠나”고 이를 반려했다.
대통령실 참모가 정책적 합리성도, 정무적 판단도 아닌 단지 대통령에게 혼날까 봐 수정을 지시했는데 그 지시가 또 통했다. 복지부는 초안을 고쳐 3년간 1000명씩 늘리고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2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더 늘려라”고 재차 지시했다. 그 자리 참석자 누구도 대통령에게 ‘충분히’의 뜻을 묻거나 적정 증원 규모나 의대 교육 여건을 설명하지 않았다.
누구도 “안 된다” 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보고가 퇴짜 맞자, 조 전 장관은 “대통령이 충분한 증원을 계속 지시했는데 복지부 장관으로서 충분히가 어느 정도인지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주무 부처 장관 고민의 수준이 이랬다. 그제야 복지부는 보고서 3건을 종합해 2035년 부족 의사 수 1만 명이라는 근거를 찾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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