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트릴레마'(Trilemma)는 흔히 삼중고로 번역하나 사실 뉘앙스가 조금은 다르다. 단순히 세 가지 고통이 동시에 있다는 뜻에 더해서 셋 중 하나를 해결하려면 나머지를 이루기 어려워지는 상충 상태를 일컫는다. 지금 한국 경제가 그래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상승을 거듭하며 1달러당 1천500원 선을 넘어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는 수입 원자재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데다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성장 잠재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화폐 가치 자체가 실제로 떨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원화 가치를 뜻하는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지난달 말 기준 89.09까지 하락,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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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원화 약세 원인엔 여러 구조적 문제가 있다. 당장 외형적 뇌관으로 지목된 것이 한미 기준금리 역전 상태의 과도한 장기화다. 역전이 무려 40개월 가까이 이어지며 최장 기록을 경신 중이다. 과거엔 역전 상태가 와도 20개월 안팎을 넘지 않았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 고수가 요인이지만, 금융당국 대처도 안일했다는 지적이 없지만은 않다. 자본이 더 큰 수익을 따라 흘러간다는 건 경제학의 기본이다. 기축통화국의 정책금리가 우리보다 더 높은 상태가 오래 고착되면서 원화 매물이 늘고 자본이 유출되고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섣불리 올리기도 어려운 게 문제다. 높은 가계 부채 수준 탓에 기준금리를 올리면 서민 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붕괴할 위험이 크다. 그럴 경우 특히 중소 상공인과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집을 산 사람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최근 통계에서 가계 빚은 1천968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선진국 평균보다 높을 뿐 아니라 통계에 안 잡히는 주택 전세 차입까지 고려하면 실제론 더 높을 걸로 추산된다. 한국은행은 가계 부채 리스크에 따른 금리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도 기준금리 동결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한미 금리 역전과 환율 고공 행진, 가계 부채는 각각 서로 상충하며 우리 경제에 부정적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비정상적 환율 상승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한미 금리 역전의 과도한 장기화다. 하지만 이를 막으려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가계 부채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런데 환율 상승은 수입 원자재 가격을 올려 생활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원화 구매력 저하로 국민 실질 소득도 감소한다. 그에 따른 타격은 중소 상공인과 저소득층이 가장 크게 본다. 이는 다시 가계 부채 상승과 서민 경제 붕괴를 촉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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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대출 안내 광고판. 2025.11.18 [재배포. DB 금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환율 1천500원대 진입 가능성과 관련해 "걱정은 안 한다"며 그 원인을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 증가에 돌린 것을 두고 상황 인식이 적절하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그는 해외 투자 증가를 '젊은 세대의 독특한 유행'으로 인식하는 듯 발언했다. 물론 환율 고공 행진엔 금리 역전 외에도 미국 주식 투자 증가와 같은 여러 원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 주식 대신 미국 기업 주식을 사는 이유가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유행을 따르는 건 아니다. 냉정하게 수익과 미래 가치만 보고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금융 당국은 국내 투자자들이 변동성 높은 국내 주식시장, 국내 기업 가치, 정부 정책 방향 등을 신뢰하지 못할 가능성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닐까. 돈과 인간의 욕망이 흐르는 방향만큼 솔직한 건 없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1월28일 09시4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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