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AI 기본법, 누가 이득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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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태 칼럼] AI 기본법, 누가 이득을 볼까

‘콘텐츠 생산자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가, 소비자의 이용권을 옹호할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AI) 기술 및 산업 발전을 우선할 것인가.’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보호를 둘러싼 갈등 전선은 복잡다기하고 첨예하다. 당사자가 많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관련 법을 만들 때는 다각도로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데이터 주권이 약한 나라는 특히나 그렇다.

정부가 AI산업 성장을 지원할 목적으로 제정한 AI기본법이 지난달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뉴스와 데이터 등 콘텐츠 저작권 보호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정부는 AI국가전략위원회 권고에 따라 ‘선(先)사용·후(後)보상’ 원칙을 기본법에 반영했다. 창작자 또는 생산자의 허락 없이 빅테크가 AI 학습에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사후에 문제가 생기면 법적 절차를 거쳐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포괄적 허용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원칙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AI산업 발전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결과적으로 콘텐츠 생산의 생태계를 파괴해 원래 취지조차 살리지 못할 위험이 있다. 콘텐츠 창작자와 생산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래야 충분한 경쟁을 통해 고품질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그것이 관련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뉴스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는 낮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5년 조사 결과에서 세계 48개국 중 31위에 그쳤다. 이는 콘텐츠 생산자의 자질 부족보다는 뉴스 유통을 독점하는 거대 포털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네이버 등 거대 포털이 뉴스 공급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공신력 있는 언론사와 검증되지 않은 1인 매체까지 모두 네이버 우산 아래 들어가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체제에서는 좋은 뉴스 품질은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다. 미디어 전반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디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뉴스 품질이 낮아지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과거 정부가 가계 부담을 줄여준답시고 통신 요금을 규제한 것이 결과적으로 통신 인프라 투자 감소→서비스 품질 저하→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과정과 흡사하다.

더구나 구글,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뿐 아니라 네이버 등 국내 포털이 경쟁적으로 AI 검색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미디어는 광범위한 ‘제로클릭’ 확산으로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됐다. 만약 AI 검색 대중화로 콘텐츠 생산자가 독자와의 직접적인 연결이 끊겨 결국 문을 닫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신뢰할 만한 검색 결과가 부족해지고, 그걸 이용하는 독자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법은 명확하다. AI기본법에 명시된 선사용·후보상 원칙을 거대 포털에는 차별 적용하는 것이다. 신생 스타트업에는 느슨하게 두되, 거대 포털은 적절한 사용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 생산자와 공생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글로벌 AI 기업들이다. 구글, 오픈AI 등은 지금도 한국의 뉴스 콘텐츠를 무단으로 긁어가 무제한 학습시키고 있다. 지금 당장 궁금한 주제를 구글 제미나이나 오픈AI 챗GPT, 네이버 AI 검색창에 입력해보라. 원하는 대답의 깊이와 정확성에서 네이버와 글로벌 빅테크 간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만약 정부가 AI 저작권 보호와 관련해 느슨한 원칙을 고수할 경우 가장 반기는 쪽은 국내 포털보다 글로벌 빅테크일 것이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국내 AI 시장도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당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 유럽연합(EU), 호주 등이 미국의 거대 AI 기업에 맞서 저작권 보호를 명문화한 AI 관련 법을 잇달아 마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웃 일본은 공정당국이 나서 AI 기업들이 언론사 허가 없이 보도기사를 활용하는 것은 독점금지법의 ‘우월적 지위 남용’이라며 조사에 들어갔고, 이를 바탕으로 주요 언론이 구글 등에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도 정부가 앞장서 판을 깔아줘야 미디어 기업이 소송전이라도 벌일 기반이 될 텐데, 오히려 빅테크에 유리한 조항을 법에 집어넣고 있으니, 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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