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무원 복종 의무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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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1.25 17:32 수정2025.11.25 17:32 지면A35

공무원의 충성과 복종 의무를 명시한 최초의 근대적 성문법은 1794년 프로이센에서 만들어졌다.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국가 재건을 명분으로 군대식 상명하복 원칙을 행정 전반에 강하게 이식했다. 이 전통은 프로이센 주도로 성립된 독일제국으로 이어졌고, 1873년 제국공무원법 제정으로 제도화됐다. 물론 독일식 관료제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영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관료제를 발전시켰고, 프랑스는 법령에 따른 규율과 행정 일관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독일식 관료제를 적극 받아들였고, 전후인 1947년 제정한 법에도 여전히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충실히 따른다’는 규정을 남겨뒀다.

[천자칼럼] 공무원 복종 의무 폐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조선 사회의 유교적 위계 문화가 더해져 공무원 조직에는 강한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내렸다. 해방 이후 1949년 제정된 국가공무원법에 복종 의무가 포함된 것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다. 다만 제정 당시 법에는 위법·부당한 명령에 이의 제기와 불복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1963년 박정희 정부가 공무원 통제 강화를 명분으로 삭제했다.

이렇게 76년간 존속해온 ‘공무원의 복종 의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인사혁신처가 어제 입법 예고한 개정안은 복종 의무를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순화하고,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불복 절차를 되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기된 문제의식, 즉 공무원도 상관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헌법존중 태스크포스(TF)가 내부 제보를 받아 ‘내란 공무원’ 색출에 나서는 것은 과도하다는 역설적 평가도 가능하다. 당시에는 법률상 복종 의무가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은 한국 공무원 조직 문화를 상명하복에서 책임주의·전문성·합리성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공무원 줄 세우기’ 같은 정치적 논란을 넘어서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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